트로트 열풍과 메타버스
트로트 열풍과 메타버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7.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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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이틀동안 청주의 한 대형 문화체육공간의 집단 움직임에 대한 시민의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내일은 미스터 트롯 TOP6`콘서트의 뜨거운 열기가 수도권의 코로나19 방역 4단계 돌입과 겹치면서 청주발 코로나 헬 게이트가 되는 건 아닌지 근심이 며칠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고 있다. 공연장 인근의 식당가를 지금도 아예 꺼리는 반응도 있다.

본래부터 트로트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는 `광풍'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금의 상황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해당 공연이 열린 체육관이 새벽 산책길에 위치해 있는 바람에 극성의 팬심을 뒤늦게나마 실감했다. 행사장 안내 대신에 가로등에 걸린 특정 사수의 깃발이 일찌감치 걸리기 시작하더니 다른 가수들의 깃발도 경쟁적으로 나부끼고 급기야 이틀 전부터 체육관 맞은편 건물에 대형 현수막이 드리운 걸 보고나서야 비로소 공연의 본질이 `내일은 미스터 트롯 TOP6'콘서트임을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델타바이러스의 폭발적인 확산 와중에 전국에서 1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든다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의 근심이고 불안이다.

이준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을 빌어 트로트를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단정한다. 홉스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된 국경일, 의례, 영웅이나 상징물 등 `전통의 창조'에 주목한다. 홉스봄은 그렇게 발명된 전통들이 역사와 동떨어져 있으며 정치적 의도에 의해 조작되고 통제된다는 사실을 문제시 한다. `만들어진 전통'은 `현재'의 필요를 위해 창조된 `과거'라고 단언한다.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시작된' 것으로서의 전통은 크게 다르다. 그러므로 소위 `꼰대'로 소외되고 있는 중장년층의 트로트에 대한 열망이 BTS를 중심으로 하는 K-pop과 공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생각 역시 확증편향에 불과하다.

다만 현재의 트로트 광풍과 극성스러운 팬심이 영욕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극되는 계층의 차별과 분리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현실'에서 조우하는 불안과 불만을 `과거'에서, 그리고 `전통'으로 치장된 특정 장르를 통해 해소하려는 트로트 팬심을 탓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로트의 뽕필 가득한 가락과 박자, 훈남의 싱그러운 연출은 `가상'의 범주에 가깝다는 현실인식은 절대 필요하다.

사물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의 질풍노도 같은 쇄도도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메타버스'의 광풍이 어지럽다.

비대면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팬데믹의 와중에 가장 핫이슈가 되고 있는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verse)'를 합성한 새로운 도전적 지배체제를 뜻한다.

대기업인 현대모비스가 올 상반기에 채용된 신입사원 교육을 `메타버스 체험'과 `비대면 랜선 여행'으로 진행하고 있고, LG그룹은 이보다 앞서 `메타버스'로 신입사원 교육을 실시했다. 금융권 역시 가상 메타버스 공간에서 라이브스트리밍 형식으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산관리 세미나를 열거나 메타버스에 가상점포를 개설하는 움직임을 서두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TV광고로 이미 안방 깊숙이 파고든 가상인물의 활약은 어떤가.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에 대한 보장과 관리 영역인 보험을 홍보하는 컴퓨터 그래픽(CG) 가상인물 <로지>의 발랄하고 역동적이며 아름다운 모습은 말해주지 않으면 현실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이 되었다.

문제는 뜻밖의 트로트 열풍이거나 메타버스의 진입이 오랫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현실의 시공간과 가상의 그것을 순식간에 허물고 있다는데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이미 희미해졌고 이런 경계의 상실이 가상의 세계에서도 현실의 화폐가 통용될 수 있는 영향권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트로트의 가락과 박자, 훈남의 몸짓에 열광하는 팬심이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 위한 과감한 선물공세로 이어지는 `현질'과 가상과 현실을 초월하는 메타버스의 유혹은 서로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극복해야 할 코로나19의 현실은 여전히 뚜렷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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