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좋은 엄마
충분히 좋은 엄마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7.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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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큰아이가 상담자의 길을 가고 있다. 부모가 권한 것도 아니고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인지 아이의 마음에 상담자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전혀 예상 못하고 있다가 아이가 상담자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좋은 동반자가 생겨 기쁘기도 했지만 스스로 충분히 좋은 엄마였는지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한창 아이를 양육하던 2000년대 초반 사회의 기류는 조기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나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통제와 억압을 많이 사용했다. 아이의 성공이 엄마의 성적표라는 생각에 인지적으로 뛰어난 학생으로 양육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가 아니라 가정교사였다. 상담자의 길을 걸으며 대상관계 학자인 도널드 위니캇의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그림책 `방긋 아기씨(윤지회 글. 그림)'의 주인공을 보면 아이가 영·유아였을 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림책의 표지를 보면 강보에 싸인 작은 아기씨가 눈에 어찌나 힘을 주고 있는지 그 눈빛을 따라가게 된다. 방긋 아기씨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아기씨의 엄마인 왕비이다. 그런데 아기씨의 엄마인 왕비의 눈빛은 생기를 잃었고 푸른색을 띠고 있다. 왕비의 결혼식 장면을 보면 왕의 눈빛 또한 푸른색을 띠고 있다. 왕도 왕비도 우울감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왕비는 아기씨가 웃기를 너무 바란다. 그래서 아기에게 좋은 옷과 음식, 그리고 장난감, 공연 등을 제공한다. 하지만 아기씨의 눈은 언제나 엄마만을 쫓는다. 엄마는 아기의 눈을, 아기는 엄마의 눈을 바라본다. 서로에게 몰두해 있는 모습이다.

도널드 위니캇은 모성 경험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한 학자이다. 그는 한아기와 같은 것은 없으며 모성과 떨어져 존재하는 아기는 없다고 말한다. 엄마는 곧 아기이며 아기는 곧 엄마라고 말한다. 아기는 자기 자신과 엄마를 구분하지 않고 엄마와 융합한다는 것이다. 왕비가 방긋 아기씨를 웃게 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웃어야 한다. 엄마가 웃었을 때 엄마만 바라보던 방긋 아기씨도 웃는다. 그림책의 뒤표지를 보면 주인공 방긋 아기씨는 없고 요람만 남아 있다. 아기씨는 어디 갔을까? 아기씨는 이제 엄마와 하나가 되었다.

절대적 의존의 시기인 영아기 때 엄마의 품은 아기에게 절대적이다. 그 안에서 아기는 전능해진다.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기 엄마 또한 전능해진다. 아기도 번쩍번쩍 안아 올리고 밤잠을 못 자도 아기를 돌보고, 아기의 냄새도 거북하지 않다. 엄마도 아기도 전능감을 맛본다. 이러한 환상은 영아기 꼭 필요한 경험이다. 아기는 엄마가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되도록 하고 엄마는 아기가 세상에 대한 신뢰와 안전을 충분히 만족하도록 돕는다.

왕비는 방긋 아기씨에게 거울의 역할이다. 아기의 눈을 비춰준다는 것은 그 욕구를 비춰 주는 것이다. 만약 고장 난 거울이라면 아무것도 비추어 주지 못하기에 아기의 상상력은 위축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상담 장면에 들어갈 때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대상을 비추어주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 눈빛, 마음을 비추어주면서 적절한 위로의 말과 행동으로 돌려주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이 누군가와 연결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충분히 좋은 엄마'와 위니캇이 말하는 `충분히 좋은 엄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언어에 대한 이해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가진 `충분히 좋은 엄마'의 언어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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