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자 사기행각에 비친 권력층 민낯
수산업자 사기행각에 비친 권력층 민낯
  • 이형모 기자
  • 승인 2021.07.0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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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이형모 선임기자
이형모 선임기자

 

100억원대의 사기를 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자칭 수산업자 김모씨의 로비 의혹이 정·관계를 강타하고 있다. 현직 부장검사, 총경급 경찰 간부, 전·현직 언론인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됐다. 박영수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은 그에게서 수입 렌터카인 포르셰를 제공받은 정황으로 청탁금지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박 특검은 렌트비를 지불했다고 해명했으나 결국 사퇴했다. 포르셰에 특검이 무너진 셈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도 김씨와 식사를 함께했고 수산물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장 측은 “선물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고가의 물건이거나 기억에 남는 선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고구마 줄기 캐듯 계속 나오는 유력 인사들의 이름은 우리나라 권력층의 추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아찔하다.

김씨는 1억원대 사기 혐의로 2016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언론인 출신 정치인 A모씨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정계 유력 인사들에게 접근했다. A씨가 김씨에게 자신을 변호한 적이 있는 박영수 특검을 소개했고, 박 특검은 후배 검사를 소개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지난 3년간 권력층 인사를 문어발식으로 접촉하면서 그의 사기 규모도 100배나 커졌다. 김씨는 선동오징어(선상에서 급랭한 오징어) 투자를 미끼로 김무성 전 의원의 형 등을 속여 100억원대를 편취한 사기 혐의로 지난 3월 구속됐다.

세간에 이번 사건이 알려진 것은 지난달 말 경찰이 서울남부지검 이 부장검사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현직 검사의 사무실을 처음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김씨의 전방위 로비 의혹은 양파 껍질 벗기듯 드러나 충격을 줬다. 정치인과 검찰·경찰·언론계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김씨의 검은 손이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나 깊숙이 뻗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씨가 인맥을 넓히는 데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생활체육단체 회장 등의 명함이 사용됐다. 1억원대의 사기를 쳤던 `잡범'이 100억원대의 사기꾼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이들 인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기꾼의 `병풍'이 됐다는 사실은 놀랍다. 정치권 주요 인사는 물론 사정기관 핵심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단순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을 넘어선 권력형 게이트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씨의 변호인은 7일 이번 사건이 로비 게이트가 아니라고 했다. 수산업자 김씨의 변호인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3회 공판 직후 취재진을 만나 “재판 진행을 보면 아시지 않겠나, 이건 그냥 사기 사건”이라며 “무슨 게이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게이트가 아닌 잡범의 단순 사기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후광을 동원한 사기가 성공할 수 있다는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특히 이번 사태가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은 아직도 고위층을 상대로 사기꾼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사회구조 때문이다. 유력인사와 친분을 쌓고 그것을 과시하면 사기가 통하는 것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기가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경찰은 김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인사들이 그의 부정 행각을 적극적으로 덮어주거나 도우려 하는 등 `호위대' 역할을 했는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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