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남한강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1.07.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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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강원도 오대산에서 발원한 한강은 충북을 거쳐 경기도 남양주에서 북한강과 합류해, 서울을 지나 서해로 흘러간다. 한강이 충북 단양과 충주를 지나 여주를 흐르는 줄기를 남한강이라 부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 앞을 흐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보듬어 위로해준 남한강은 늘 정신적 지주였다. 하늘에 종달새 날아올라 봄 햇살 부르면 가녀린 물비늘 춤추던 시간 언제 가는지 모를 철부지 때에 강변 조약돌 모두가 나의 친구였다. 하루해가 저물면 강물도 잠을 자니 어스름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날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 절반될 무렵 무너졌다. 기대했던 중학교가 멀어져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고민에 빠졌다. 어린 마음에 알던 가난은 실체가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논과 밭, 초가집이 전부였다. 워낙 가난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글방 한문공부도 6개월 만에 포기했다.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저 집에서 하릴없이 보내며 고민만 쌓여갔다.

문득 강이 보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터라 벌떡 일어나 강으로 갔다.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어제의 강이 아닌 것 같았다. 잔잔했던 수면이 사납게 흔들리면서 무어라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서너 시간을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넋 나간 사람처럼 강을 쳐다보았다.

사방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무거운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가 저녁식사도 안 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힘없는 얼굴로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어떻게든 네 장래를 위해 다 해줄 것이니 믿어라.”

뾰족한 수가 없는 걸 알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니 조금은 진정이 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때까지 나는 `우물안의 개구리'였다. 집 떠나면 죽는 줄 알았다. 한 번도 세상 밖으로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감히 다른 지역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세상을 알아야 했고, 짧은 기간 배운 한문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더 알고 익히기 위해 서울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한글도 한문도 공부에 도움이 컸다. 더불어 세상 바깥을 아는 데 유익했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신문을 강으로 가지고 가서 읽고 또 읽었다. 기사, 광고, 사진까지 하나 빼놓지 않고 머리에 넣고 마음에 담았다.

때로는 강가에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하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면서 신문과 강과 내가 하나가 되었고, 밝아진 마음속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강과 함께 하면서 삶이 풍요해지고 생각이 넓어짐을 느꼈다.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강을 보면서 언제일지,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잘될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집중된 생각과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았다. 청주에 사는 외사촌 형님이 취직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눈에 번쩍 띄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나이 열일곱 살,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날에 나의 청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영원한 친구 남한강은 그 후 탄금호가 되어 더욱 넓은 수면으로 변했으나 `내 마음의 강'은 언제까지나 그대로이다. 자호 南江은 내 이야기를 들은 서예가 이쾌동 선생이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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