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둥어가 없다고 할 수 있나?
망둥어가 없다고 할 수 있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7.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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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태진아의 히트곡 `사랑은 아무나'의 후렴 구절이다. 10여년 전 이 노래가 영동군수 선거에서 한 후보의 로고송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개사됐다. `군수는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이 노래는 당시 재선을 노리는 현직 군수이자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1위를 달리던 후보가 차용했다. 후보의 홍보차량들이 주야장천 틀고 다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맞대결 구도였으니 그 `아무나'가 누군지는 뻔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예상을 깨고 `아무나'를 선택했다. 현직 군수가 오만으로 막판 대역전을 자초했다는 것이 당시의 중평이었다. 당시 선거판을 울리던 태진아의 노래를 떠올리게 한 사람은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다. 그는 얼마 전 자당 의원들 단톡방에 `숭어가 뛰니 망둥어도 뛴다'는 글을 올렸다가 구설을 겪었다. 같은 당 윤희숙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이같이 촌평한 것이다. 한 후배 의원이 “누가 숭어고 누가 망둥어냐”고 꼬집고 “후배가 출마한다는데 격려는 못할망정…”이라며 혀를 찼다. 이준석 당 대표도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며 자제를 요청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홍 의원에게 당내 경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그렇더라도 동료의 결단을 폄훼하고 조롱한 발언은 오만하고 경망스럽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론조사 지지율 3%대를 오가는 그가 숭어를 자처하며 망둥어를 입에 올리는 것도 민망한 일이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홍 의원이 한 말은 실언이지만, 사실 요즘 유권자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기도 하다. 대선 출마자로 꼽히는 인물이 여야를 합쳐 20명이 넘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선 9명이 출사표를 내고 이미 TV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당 역사상 전례가 없는 규모라고 한다. 국민의힘도 7명이 출마를 공식화 했고, 윤석열과 최재형 등 당밖에서 거명되는 인사까지 포함하면 13명에 달한다. 정의당 등 제3 정당까지 고려하면 대권 도전자는 20명대 중반에 이를 전망이다.

여야는 공히 “주자들이 많이 나서는 것은 그만큼 당이 활력을 갖고있다는 증거”라며 긍정적 해석을 하지만 유권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도나도 노릴 정도로 만만해진 것 아니냐는 걱정이 가장 깊다. 두명의 직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고 현직 대통령은 낙제점을 받고있는 우울한 상황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만용을 부추긴 탓이 크다지만 길어지는 출마자 행렬이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선정국을 활용해 존재감을 키워 추후 정치적 입지를 확장하려는 얄팍한 계산으로 출마를 강행한 인물이 적지않다는 탄식도 들린다. 자신을 후보군에 끼워넣어 대통령 급으로 포장해서 유권자를 오도하겠다는 불량한 의도가 엿보인다는 얘기다. 후보가 난립하니 역량과 자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제 열린 민주당의 경선후보 첫 TV토론에서는 이런 우려들이 현실로 드러났다. 방송시간에 맞춰 9명의 후보에게 발언시간을 고루 배정하다 보니 진행은 산만하고 내용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깊이가 있어야 할 답변도 원론에 그쳤고 질문을 받지못한 후보는 일방적 자기 홍보로 시간을 때웠다. 친밀한 후보들끼리는 덕담도 주고받아 사랑방 간담회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후보가 더 등장할 국민의힘 토론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이 노래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유권자들이 부르면 상대를 깔보는 오만한 비유가 아니라 후보자들의 과욕을 일깨우는 경종이 된다. 대권을 향해 달리는 주자들이 유권자들이 부르는 이 로고송을 귀담아 듣고 자신을 재점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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