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길 따라 상념에 잠기다(1)
마을길 따라 상념에 잠기다(1)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1.07.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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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제가 졸필을 자랑함에도 또 글을 쓰겠다고 자청한 것은 요즈음 보훈학회와 보훈심사위원 활동에 꽂혀 보훈제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호국보훈을 위해 귀 기울만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의지였는데 아직 너무 어려워 넘기기로 하고, 대신 신록이 우거진 마을길을 따라 산책하면서 떠올린 소소한 단상을 정리하기로 합니다.

제 고향인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신송3리. 통합 청주시 전에는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3구였습니다. 자연부락 이름은`자리메기'입니다. 지형적으로 자라목 같다고 해서`자라목이'인 것을 편하게 불러 굳어진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청주 시내에서 10년을 살다가 아버지의 부름에 고향집 지척인 남일면 효촌리에 터를 잡았습니다. 수시로 일손을 도우러 고향집을 드나드는 것이 아내에게는 불편할지 몰라도 아이들에게 흙냄새와 수많은 귀한 작은 생명들을 접하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가 다닌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를 보여주고자 고향집을 나섭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신송초등학교가 있는데, 숲이 울창한 고갯길을 넘어가야만 합니다. 아카시아 향이 진동을 합니다.

고갯턱에는 누에 농사를 짓느라 뽕나무밭과 그 옆에 무밭이 있어 오가며 슬쩍 오디와 무 서리를 하곤 했습니다. 학교가 작고 아늑해 보입니다. 몇년 전 방서지구 개발로 최단거리에 있는 이 학교가 이전되느냐, 폐교되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었는데, 동문과 학부모의 노력으로 이전과 폐교도 막아 냈습니다. 교육의 효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동산을 돌고 있으니 공군사관생도들이 처음 비행훈련 할 때 타는 프로펠러 경비행기가 경쾌하게“웨~엥”하고 지나갑니다. 아이들은 비행기를 가까이 봐서 신기해 하지만, 군용기의 소음이 시끄럽다는 민원과는 달리 어릴 적부터 듣고 살았던 터라 정겨울 뿐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부대가 이전되어야 한다는 개발 논리가 있고 그렇게 되면 청주시 남쪽의 발전이 대폭 확장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공군부대가 원형에 가까운 고향마을을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다시 고갯길로 돌아가니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전경과 선선한 바람이 좋습니다. 무논이 한창인 들판을 가로지르니 아이들이“아빠 저거 까만 거 뭐야? 징그럽기도 하고”라며 손을 붙잡습니다. 옆 시냇물에 올챙이가 가득 모여 있습니다. 그냥 개구리 올챙이가 아니네요. 두꺼비 올챙이입니다. 국사봉에서 발원한 물이 무심천으로 흘러 드는데 어릴 적보다 물이 좀 탁해지긴 했어도 아직 물이 깨끗한가 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관찰학습이 제대로입니다. 해가 길어졌어도 더 가고자 하는 숲길은 어두울 것 같아 아이들을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고 해가 지기 전 마을을 감아도는 숲길을 얼른 가보기로 합니다.

제가 아끼는 이 오솔길은 고향집 뒤 선대의 묘로부터 시작되는 수백 미터의 소나무숲길입니다. 집 뒤의 언덕을 오르면 앵두가 벌써 빨갛게 탐스럽습니다. 집 뒤에는 수호신과도 같은 멋진 소나무 몇 그루가 그림 같은데, 저보다 나이가 많을 겁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안으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은 이른 산딸기 덤불을 지나면 비밀의 소나무숲 오솔길이 열립니다. 바람이 불면 솔 향과 신록의 향긋함이 온몸에 퍼집니다.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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