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청춘
늙은 청춘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7.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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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봄이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여름이다. 춥고 긴 겨울을 웅크림으로 견디며 고대했던 봄. 겨울 동안 눈 쌓인 계곡을 누비며 유일하게 낭송하는 영시 `록키산맥에 봄이 오면'을 낭송해 보며 버텼었다. 봄기운에는 신비로운 생명의 조화가 있다. 그러나 이 자연의 이치에도 저절로 값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른 가지에 싹을 틔우기 위하여 나무도 나와 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땅 밑에 흐르는 생명의 수액을 빨아올리는 것이리라. 봄이 오면 꽃은 저절로 피고 또 때가 되면 저절로 열매가 익는 줄 알았는데 자연도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또 서로 상생한다.

`록키 산(맥)에 봄이 오면 /나는 당신 곁에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하늘빛 눈을 가진 /귀여운 내 연인 그대 산들에게로. //새들은 하루 종일 노래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되풀이해서 말하겠어요./ 록키 산에 봄이 오면.'

이제 시작된 여름이다. 가을이 오기에는 한참 이른 데 하늘이 드높다. 장마가 지나가고 찜통더위의 고난이 지난 뒤에야 볼 수 있는 파란 하늘이다. 구름은 마치 푸른 정신 위에 둥둥 떠다니는 꿈같다. 엊그제 하지(夏至)가 지났다. 망종과 소서 사이의 음력 5월, 양력으로 6월 21일께다. 북반구에 있어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 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북극 지방에서는 온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시간은 1년 중 가장 길다.

땅콩밭과 고추밭의 작물들이 제법 푸르름으로 어울렸다.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내기를 끝내고 늦게 심는 콩과 가장 늦게 심는다는 들깨까지 심었다. 이때쯤에 농촌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단양의 대강면 용부원리에서는 하지까지 기다려도 비가 오지 않을 때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를 지냈고, 또 이웃동네 충주 엄정면 목계리의 경우는, 한강지류의 소(沼) 속에 있는 용바위에서 소를 잡아 용바위에 피를 칠하고 소머리만 소 속에 넣었고 이때 흔히 키로 물을 까불어서 비가 내리는 듯한 유사주술적(類似呪術的)인 동작도 한다.

올해는 장마가 늦다. 이때쯤 농사일을 끝내고 더운 여름날이면 냇가에 나가 천렵을 했다. 주로 남자들이 즐기던 피서법의 하나다. 냇물이나 강가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오늘날 천렵은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농촌에서만 행해지는데 과거에 비해 놀이문화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올해는 물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는 그렇고 지인들과 계곡에서 닭죽을 끓여 먹으며 천렵을 할까 보다.

한해의 반이 지나 어느덧 7월. 녹음방초 우거진 계곡에 들어가 나무들을 보면 내 몸에도 맑고 푸른 수액이 흐른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나무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야 꽃도 풍성하고 빛깔도 곱다. 나이 듦이 나이 먹음이 절대로 젊음을 벗어던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활기찰 때 나는 청춘 같다. 경험이 없는 젊음보다는 상처의 아픔을 아는 나이 든 청춘이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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