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화재
쿠팡 물류센터 화재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1.06.21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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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구조대장(소방령).

27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동료들과 유족의 오열과 함께 했다.

김 구조대장은 지난 17일 발생한 쿠팡의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화를 당했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및 수색을 위해 동료들과 현장에 투입됐다가 실종된 지 48시간만인 19일 오전에 숨진 채 발견됐다.

가장 먼저 투입됐다가 동료들이 모두 빠져 나온뒤에도 현장을 탈출하지 못했다. 구조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동료들을 모두 안전하게 내보내기위해 뒷 쪽에서 탈출을 지켜보며 마지막으로 빠져나오려다 끝내 화마에 갖혀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김 구조대장은 동료들과 인명 수색을 위해 화마를 무릅쓰고 지하 2층에 진입했다. 인명 구조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진입했지만 창고에 쌓인 각종 적재물이 무너져내리며 불길이 세지자 황급히 탈출을 시도했다.

진입한 순서의 역순으로 탈출을 하다보니 선두로 들어갔던 김 대장은 탈출 대열의 가장 뒷편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내 마지막 이승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출구까지의 거리는 불과 50m. 평소같으면 한달음에 단 몇초만에 뛰쳐나올 수 있는 거리였지만 화마 때문에 50m를 남겨두고 가족, 동료들을 더는 만날 수 없게 됐다.

김 대장의 안타까운 죽음이 전해지자 많은 국민이 슬퍼하고 있다. 19일 열린 영결식에서 김 구조대장의 어머니는 “나도 데리고 가라, 너 없이 어떻게 사니”라며 오열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 정부부처 공무원 등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다. 영결식에서 문 대통령은 대독한 조사를 통해 “고인은 화마의 현장에서 앞장서며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열정과 헌신을 대한민국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난 물류센터 소유자인 쿠팡은 김 구조대장의 유족들에 대해 평생 지원을 약속했다. 이 회사의 강한승 대표는 20일 “고 김동식 소방령님의 숭고한 헌신에 쿠팡의 모든 구성원의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애도를 표한다”며 “유가족들이 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고가 난 지 닷새만에 쿠팡 물류센터 화재가 인재일 가능성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이상규 경기도 소방재난본부장은 20일 김 구조대장의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 작동이 8분 가량 지체됐다”고 밝혔다. 화재가 감지되자마자 곧바로 터져서 물줄기가 흩뿌려져야 하는데도 스프링클러 작동이 제대로 되지않았다는 설명이다.

스프링클러 헤드 내부에는 온도를 측증하는 감열체가 있다. 불이 나서 뜨거워지면 이 감열체인 휴즈 메탈이 녹게 되고 즉시 뚫린 노즐을 통해 대량의 물을 분출시켜 화재를 진압하는 원리다. 실제 앞서 쿠팡 물류센터의 일부 직원은 스프링클러 미작동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 역시 인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첨단 수사 기법을 도입해 화재 원인을 밝혀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 화재가 우리에게 남다른 이유는 첨단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이기 때문이다. 이젠 국민 생활과 뗄레야 뗄수없는 물류 배송 시스템에서의 대형 화재. `첨단'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또 하나의 예고된 인재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또다시 우리는 크게 낙담할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을 고려한다면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사후약방문'. 이번 사고가 부디 마지막 인재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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