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무게
상실의 무게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6.20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하나하나 손가락을 접어가며 제발 오지 말길 바랐던 그날이 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 라인의 엘리베이터 리모델링을 시작하는 날. 다행히 관리사무소 측의 배려로 한 동에 두 라인이 있는데 공사날짜를 서로 엇갈리게 잡아주어 공사하는 내내 옆 라인의 엘리베이터로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서 우리 집까지 계단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정말 어찌 불행 중 다행히 아닐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만은 예외였다. 우리 둘째는 이제 겨우 두 돌이 되었고, 걸을 수는 있었지만 올라가는 건 고사하고 내려가는 것도 무리였기 때문에 결국 내가 안고 집까지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옆에서 내 옷자락을 잡고 내려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둘째아이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내려갈 때마다 엘리베이터의 부재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 익숙해져야 하건만 매일같이 눌리는 허리와 모든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무릎은 나날이 아파지기만 했다. 그날도 역시나 크게 숨 한번 들이쉬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아파트 주민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다시 발을 내 디디려는 순간 주민의 한마디가 세차게 귀를 뚫고 지나갔다.

“요새는 어린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어”

그 뒤에 같이 올라가던 일행분이 무슨 말로 대화를 이어간 것 같았는데 순간 혼이 나간 듯 정신이 멍해졌다. 엄마가 된 후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해주었기 때문에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그대로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다. 순간,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필 이 여름에 한다고 시작하는 날부터 구시렁거린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일상 속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는 이런 가벼운 상실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의 한계에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여러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살아있었다면 두 번째 생일을 맞이했을 정인이, 운전을 하다가 스쿨존에만 진입하면 생각나는 민식이, 영화 `소원'의 나영이, 그리고 우연찮게 며칠 전 티브이에서 보게 된 황산테러로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간 태완이까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말을 살면서 참 여러 번 들었는데, 미래가 참혹해져 가는 느낌이 점점 짙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대와 방치 속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고통받고 죽어갈까. 그 죽음조차 숨겨지고 훼손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나면 우리는 주로 범죄자에 대한 분노로 감정을 표출한다. 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항상 피해자 아이들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그분들이 여생 내내 지고 가야 할 상실의 무게에 대해 정말 마음깊이 애처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보태기 위해 범죄로 인해 천사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청원버튼도 누른다. 제발 힘 있는 분들이 그 힘을 정의를 실현하는 데 써달라는 간절함도 손가락에 싣는다. 그리고 더 이상 계단에 불평하지 않기로 했다. 내려오는 계단도 이제는 할만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