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걱정은 환자에게 맡겼으면
환자 걱정은 환자에게 맡겼으면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6.20 1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병원 수술실에 의무적으로 CCTV를 설치토록 하자는 의료법 개정을 놓고 여의도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환자의 인권과 우호적 여론을 앞세워 개정을 추진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부작용이 더 크다며 의사협회(의협)의 입장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시도된 지 5년이 돼가지만 의료계 반발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는 찬반을 아우르는 해법을 도출해 해묵은 논란에 종지부를 찍자는 여론이 높다. 우선 의협과 국민의힘에 사고의 전환을 주문하고 싶다.

의협은 극소수의 일탈을 근거로 의료인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몬다고 항변한다. 언론을 통해 일반에 알려진 병원의 불법 의료행위 대부분은 내부 신고나 폭로로 드러났다. 자율적 감시를 외쳐온 의협이나 의료당국이 인지해 적발한 사례는 드물다. 실상이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추정을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의협은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집계한 전문직 성범죄 1위가 어느 직종인지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CCTV 의무화에 80% 이상이 찬성하는 압도적 여론을 자초한 책임이 크다는 얘기다.

환자 측의 소송이 남발될 공산이 높다고도 주장한다. 의료분쟁과 소송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입법의 취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를 다루는 쟁송에서 과실을 입증할 책임은 환자 측에 있다. 그러나 법정에 제시되는 객관적 증거는 병원이 작성한 환자의 진료 및 의료 기록 정도다. 수술실에는 환자와 의료진만 들어갈 수 있다. 마취 상태의 환자가 수술실에서 벌어진 일을 알 턱이 없다. 병원이 기록한 일방적 자료에서만 진실을 구할 수밖에 없으니 환자 쪽이 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서 환자단체는 수술 과정을 찍은 영상물이 법정에서 환자 측을 대변할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고 주장한다. CCTV 의무화 법안이 발효되면 승산 없는 소송을 지레 포기하는 환자들이 줄어들 테니 소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송의 증가는 개정법안의 효과이지 부작용이라고 할 수 없다.

CCTV를 의식한 의사들이 소극적으로 수술에 임하거나 어려운 수술을 기피해 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수술 중인 환자의 촬영이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이준석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이 신중론을 펴며 내세우는 핵심 논리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CCTV 설치는 병원의 의무지만 촬영은 환자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수술실을 촬영하게 되면 의사가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병원의 관리 소홀로 환자의 신체를 찍은 영상물이 외부로 유출돼 인터넷에 나돌 수도 있다”는 병원의 경고(?)에 공감한 환자는 CCTV 가동을 거부할 것이다. 더욱이 수술실에 들어가는 중환자에게 의사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신이나 다름없다. 이 아득한 위계 앞에서 의사의 심기를 거스르며 촬영을 고집할 환자나 가족이 얼마나 될까?

국민의힘과 의협의 반론이 설득력을 발휘한다면 의료법이 개정되더라도 환자들의 외면을 받아 사문화할 것이다. 환자들이 불이익을 겪을 것이라는 걱정을 국민의힘이 대신 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인 환자에게 맡겨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환자들이 그다지 원치않는 환자 걱정에 집착하면 환자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의협도 의사들이 억울하게 뒤집어쓴 과실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법 개정에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으면 좋겠다. 공공 의료시설부터 시작해 민간으로 확대하는 단계적 도입도 고려할 만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