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지 마라, 잘 익어라
떨어지지 마라, 잘 익어라
  • 신찬인 충북도청소년종합진흥원장
  • 승인 2021.06.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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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찬인 충북도청소년종합진흥원장
신찬인 충북도청소년종합진흥원장

 

아파트 산책길 모퉁이에 개복숭아 나무의 열매가 수줍은 듯 발그레하게 익어 간다. 아랫부분의 굵은 가지가 뚝 부러져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면, 이 또한 신의 섭리이지 싶어 경이롭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지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 잠시 나무를 살펴보곤 한다. 다른 나무에 비해 왜소하고 볼품이 없어서 눈에 잘 띄지 않기에 더욱 관심이 간다.

가을이면 낙엽이 지고 낙엽은 쓸고 쓸어도 또 쌓이곤 한다. 청소를 하는 분은 낙엽을 태울 수도 내다 버릴 수도 없는지라 산책로 한쪽에 모아두곤 한다. 그럴 때면 웬일인지 낙엽을 쓸어 붙이는 곳이 으레 개복숭아 나무 아래다. 그러고 나선 빗자루를 부러진 나뭇가지에 걸쳐 놓기 일쑤다.

낙엽은 왜 하필 이 나무 아래에 버려지는 걸까, 빗자루는 왜 하필 이 나무에 걸쳐두는 걸까? 안쓰러운 마음에 빗자루를 근처의 다른 곳에 옮겨 놓지만, 다음 날이면 또 개복숭아 나무에 걸쳐 있곤 한다. 그런 모습은 겨울이 돼도 마찬가지다. 눈을 쓸어서 붙이는 곳 또한 개복숭아 나무 아래다. 쌓였던 눈이 조금씩 녹으면 낙엽과 흙의 입자들이 검게 드러나면서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볼썽사납다. 가뜩이나 왜소한 나무의 주변에 지저분한 것들을 모아두는 것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봄이 되면 산책로에는 벚꽃과 살구꽃, 산수유가 앞다투어 피어난다. 그러나 가장 화사한 것은 단연 개복숭아꽃이다. 가지마다 다보록하게 피어나는 연분홍 꽃잎과 은은한 향기에 취하다 보면, 잃었던 춘심이 되살아나 마음이 설레곤 한다. 그 작고 보잘것없는 체구의 어디서 저런 놀라운 빛깔과 향기를 만들어 내는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꽃이 진 자리에서 작은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서 자라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로움에 또 한 번 가슴이 따뜻해지곤 한다. 이 나무가 이렇게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만큼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안겨졌던 낙엽이나 눈덩이가 오히려 생명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되지는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이 왜소한 나무의 변신은 신의 섭리라기보다는 스스로 살아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이지 싶다.

열매가 조금씩 커지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또 가지가 부러질까 싶어 적당히 솎아 준다. 그리고 한 알 한 알에 `떨어지지 마라, 소담하게 자라라.'는 간절한 소망을 불어 넣는다.

얼마 전 여중생 둘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른의 못된 행동으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두 생명이 세상을 버린 것이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세상을 원망하며 방황했을지 짐작이 간다.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세상은 왜 이리도 모질기만 한 걸까. `그들에게 주변의 누군가 작은 관심이라도 가졌더라면, 이렇게 참혹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마음에 숙연해진다.

물론 우리 주변엔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 불우한 가정에서 성공을 일군 사람을 보며 그들을 본받으라고 한다. 과연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험난한 길을 헤쳐 나왔을까.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이나, 배고플 때 김밥 한 줄을 건네던 따뜻한 이웃이 있지는 않았을까? 나무 밑 풀숲에 가까스로 꽃대를 올리고 핀 메꽃이 “떨어지지 마라, 잘 익어라.”고 온몸으로 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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