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6.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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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고 안 싸우면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한쪽은 싸우고자 덤벼드는데 한쪽은 싸우지 않고 대화한다? 이게 가능한가?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를 알아보는 건 소크라테스의 핵심사상을 알아보는 일과 관련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아테네 법정에서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인생을) 검토한다는 건 뭘까?

일단 검토가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검토가 되면 당혹스러운 상태(aporia)에 빠진다. 당혹스럽다는 건 판단이 안 되는 상태이다. 검토 당하면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 곧 판단불능 상태에 빠진다.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들도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면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달려들어서 소크라테스를 부당하게 만들고자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판단불능상태에 빠진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럼 소크라테스가 정당하게 되고 상대가 부당하게 되는 걸까?

소크라테스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당하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장 자체를 하지 않는다. 곧 판단하지 않는다. 왜?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곧 그는 언제나 판단불능상태, 곧 깨진 상태로 산다. 깨진 상태가 무지를 자각한 상태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산다.

나는 무지하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이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살아갈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상대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의(절제, 용기, 경건, 우정 등)를 아십니까? 상대는 그렇다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상대의 대답을 듣고 그건 인간적 덕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곧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는 걸 보여준다.

당신은 자신의 지식으로 자신이 정당하다(是)는 걸 입증하고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주어진 주제에 대해 시비(是非)를 가릴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곧 (시비)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한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잘것없는 인간적 지혜로 잘났다고 떠드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적 지혜라는 것이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 자신의 정당성과 상대의 부당성을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곧 싸우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검토하라. 그러면 너의 무지를 자각하게 될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건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살라고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적 대화가 성공하면 상대도 소크라테스처럼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된다. 무지를 자각한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상태이다.

소크라테스와 대화 후에 상대는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느냐”고 소크라테스에게 묻는다. 그때 소크라테스는 “내가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황당하다.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해서 깨졌는데 소크라테스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니.

이걸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irony)라고 한다.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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