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를 서며
결혼식 주례를 서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6.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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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지난 토요일 결혼식 주례를 섰습니다.

빛고을 광주에서 사업을 하는 동창친구의 둘째아들 혼사였는데 신랑 신부가 늠름하고 건실한데다가 주례사가 감동적이었다며 고마워해 보람을 느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로 주례사를 하고 신랑 신부와 기념사진도 마스크를 쓴 채로 찍어야 하는 시대의 아픔이 야속하기도 했고, 신혼여행도 축하이벤트도 맘껏 하지 못하고 거친 삶의 바다로 출항하는 새내기 부부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청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면서 새삼스레 결혼과 부부의 삶에 대해 곱씹어봤습니다.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키워서 출가를 시키는 결혼은 신의 섭리이자 신성불가침입니다. 하여 결혼은 인륜대사를 넘어 인류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그래서 주례 서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생경합니다.

주지하다시피 결혼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이고 결혼식은 부부 됨을 대내외에 알리고 공증하는 의식이자 문화입니다.

그렇게 탄생된 신랑 신부가 바로 부부(夫婦)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남녀의 신분을 일컫는 부부가 됩니다.

당사자들의 선택과 사랑에 의해 부부가 되지만 세상에 모래알처럼 많은 남자와 여자 중에서 내 남편이 되고 내 아내가 된다는 건 기적이나 진배없습니다. 불가의 인연법에 의하면 오백생을 거쳐서 쌓은 인연이라야 부부의 연으로 만날 수 있다 했으니 당연지사입니다.

하지만 무촌임이 웅변하듯 헤어지면 남인 게 부부입니다. 아니 남보다 못한 게 부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살아야 하고, 오른손 왼손처럼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오른손이 오른손 손톱을, 왼손이 왼손 손톱을 깎을 수 없어 오른손이 왼손 손톱을, 왼손이 오른손 손톱을 깎아주듯이 부부란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고 보듬어주는 존재입니다. 아니 그럴수록 빛나는 존재가 바로 부부입니다.

부부를 옛날 사람들은 내외(內外)로 불렀고 요즘 사람들은 쌍 또는 커플로 칭하기도 합니다. 내외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합니다.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는 물론 여보, 당신, 자기, 임자, 영감, 마누라, 누구 아빠 누구 엄마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은 아내가 아닌 `안해(집안의 해)'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내가 집사람과 여편네가 아닌 안해로 불림 받고 받드는 부부에 복락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돈 많고, 능력 좋고, 잘 생기고, 마음씨 좋은 사람을 배우자로 사위로 며느리로 삼고자 합니다. 다 부질없는 욕심이고 희망입니다.

완벽한 사람 없듯 완벽한 배우자도 없습니다. 한쪽이 좋으면 한쪽이 부실하고, 살다 보면 장점이라 여긴 게 단점이 될 수 있고 단점이라 여겼던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게 부부이고 세상사입니다.

속된 말로 콩깍지가 씌어서 결혼했지만 살다 보면 익숙함이 독이 되어 곱상이 밉상이 되기도 하고 정제되지 못한 말과 행위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부생활에는 인내와 역지사지가 필요합니다.

산울림처럼, 실과 바늘처럼, 묵은 김치처럼 사는 부부가 최고의 부부입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공동체가 피폐해지고 있는데 독신들이 증가일로에 있어 걱정입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이니 이왕이면 결혼해서 인생의 단맛 쓴맛과 희로애락을 골고루 맛보시기를 강추하며.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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