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멸렬 - 길냥이 가족
지리멸렬 - 길냥이 가족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6.08 2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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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주변 CCTV는 초등학교 코너와 후문 쪽에 각각 1대씩 있는데, 확인 결과 도난당한 시간대에는 특별히 의심되는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혹 의심되는 분은 없으세요?” “의심은 되나 집안을 살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사건 종료 부탁드립니다.”

작년에 삽목 한 제라늄과 야래향이 제법 뿌리를 내린 것을 확인하고 좀 더 커다란 화분에 옮겨 심었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대를 올리는 녀석들이 대견스러워 아침인사는 첫 우물을 길어 적셔주었다. 그렇게 나란히, 옹기종기 모여 자라던 녀석들이 한 순간 자리를 떴다. 오래된 집이 무너지면서 문짝크기의 시멘트 블록을 받침으로 자라던 녀석들, 아침의 시원한 우물물과 따뜻한 열을 받아 전해주던 시멘트 블록에 흔적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 뿌리가 왕성하게 큰 녀석들은 아닌데, 이제 활착하는 단계인데 어디로 간 것인지? 잠시 멍한 상태에서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의 번호를 눌렀다. 세 개의 번호와 통화버튼.

출동이 늦어질 수 있다는 문자를 확인하고, 주변을 살폈다. 아침에 물을 주고 흘러내린 물이 흙을 적신 덕에 발자국이 남았다. 커다란 운동화자국이 흙에도 장판위에도 찍혔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선 쪽에는 작은 발자국이 있다. 한 사람 짓이 아니다. 화분이 좋고 꽃이 좋은 것은 통째로 가져가고, 화분이 좋고 꽃이 안 핀 것은 화초를 뽑아 던지고 화분만, 화분이 오래된 것은 화초만 뽑아 갔다. 수사를 의뢰하고 가격이 제법 나가는 화분이 없어진 것이 확인되자 화가 올라왔다. 오래토록 보면서 작정을 한 것이다. 주변이다. 30여개를 속전속결로 옮기려면 트럭정도가 동원 돼야 하는데 차가 들어올 수 없는 골목이다. 의지만 있다면 주변 CCTV와 블랙박스에 잡히지 않는 몇 안 되는 집인데, 담을 없앴더니 주거침입에, 여럿이 보라고 늘어놨더니 절도에, 그래도 난 다시 삽목을 하고 화분을 늘린다.

“주차장에 차를 뺄 수 없게 주차를 해서 빼 달라 부탁하는데 안 빼주겠다는데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사유지 주차장은 저희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보복성인데 어렵다고요 고의적으로 뺄 수 없게 대고 안 빼주겠다는데도 말입니까?” ”네“

작은 딸의 생일 저녁을 먹으러 다섯식구가 옷을 갈아입고 차로 이동을 했다. 앞집 원룸 주차장, 뒤로 후진할 수 없도록 차가 세워져 있다. 차량에는 차주의 연락처도 없다. 원룸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차주를 찾아 잠시 빼줄 것을 요청했다. 답변은 `본인이 세워야 할 자리에 차를 세웠으니, 뺄 수 없도록 뒤에 세워놓은 것이다. 절대 빼주지 않겠다한다.' 남의 차를 아예 못 움직이게 보복성 주차를 하면 재물손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는데 경찰은 모르겠다로 일관이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차를 세워둔 채 다섯 식구는 버스를 타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보복성 주차를 한사람은 원룸에 살면서 매일 정원 일을 하는 나를 본다. 시간이 더해 정원은 더 풍요롭다.

두세 달 전부터 두 마리의 까치가 날카롭고 소란스럽게 지저댔다. 처음엔 알을 부화시키면서 길냥이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가 싶었는데, 새끼가 자라 비행을 하는데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지저귄다. 동이 트면서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온종일 소란을 떤다. 이젠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이젠 고양이 새끼까지 위협하면서 길냥이 가족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그러건 말건 길냥이 가족은 어슬렁어슬렁 뜰을 거닐며 여유롭게 동네산책까지 즐긴다. 까치소리에 동네 사람들마저 열을 내는데 길냥이 가족에게는 괴롭히고 해를 주는 까치는 안중에도 없다.

까치에게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길량이 새끼는 진득하니 엄마아빠를 따라 다니질 못하고 토끼인양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소중하게 기르던 화초를 도난당한 우리 가족은 텃밭의 푸성귀를 뜯어 뜰에서 바비큐파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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