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숲,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의 숲, 그럼에도 불구하고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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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6월의 숲은 절정의 초록이다. 새로 난 잎들은 여린 빛깔을 벗어던지고, 슬쩍 손길만 스쳐도 푸른 물감이 주르륵 흘러내릴 듯 맹렬하다. 모진 겨울을 견디고 움을 튼 이른 봄날의 새싹은 경이로우나 어딘가 불안하다. 차마 별리를 거부한 채 남아있는 낡은 잎들과 상록수의 짙푸른 잎 사이로 힘겹게 새 삶을 시작하는 연둣빛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색깔의 봄은 찬란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무성하게 성장하기 위한 아우성이 있고, 살아남기 위한 잎들의 처절한 사투가 있음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일제히 초록으로 탈바꿈하는 6월의 숲길을 걷는 일은 거뜬하게 성장한 숲의 무성함을 가슴에 담고, 또 그 생명의 힘과 닮고 싶은 움직임이다.

6월의 숲길을 걸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사무친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좌절에 시달려 왔는가. 키 작은 풀잎이거나 커다란 나뭇잎들의 건강함도 마찬가지여서 때론 모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거나 먼저 훌쩍 커버린 다른 잎들에 묻혀 시름에 겨운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나무가 숲을 이루고 짙푸른 초록으로 빛나는 6월은 잎사귀들의 생애에 가장 빛나는 계절로 남아 있다. 그 찬란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모진 시련을 참고 견뎌냈거나 당당하게 맞서 극복하는 힘을 자랑하는 상징이다.

6월의 숲길을 걷는 일은 잠깐이라도 세상의 모든 나무들에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는 마음을 걸음마다 새기는 일이다. 더 자라면 결실을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잎들의 겸손함을 배우는 일이고, 무성한 초록으로 우리의 눈을 맑게 하는 빛들의 반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일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성한 유월의 잎사귀들이 세상을 향해 기꺼이 내뿜은 신선한 공기를 찬양할 일이고, 그리하여 온갖 기술로 더럽혀온 세상을 살리고, 살게 하는 부활의 은혜임을 깨닫는 일이다. 고개를 들어 키 커다란 나무의 높고 싱싱한 잎을 바라보며 걷는 6월의 숲길은 홀로 외롭거나 서러운 일, 오를 수 없는 높은 것들과 낮은 이들의 고단하고 쓸쓸함을 동경하고 단련하는 위로와 치유의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앞의 경제와 탐욕, 순간적인 서운함에는 즉각 반응하면서 서서히, 그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후위기로 인한 공멸의 위험에는 대체로 감각이 없다. 그러므로 탄소를 줄이고 세상을 신선하고 맑게 하며 건강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나무와 숲이 얼마나 큰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도 없다.

(전략) 인류여, 원한다면 계속해서 존재하라./ 그 다음엔 차례차례 죽는 일만 남았으니,/ 구름에겐/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낯설거나 이상스럽지 않다.//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 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한다.// 구름에겐 우리와 함께 사라질 의무가 없다./ 흘러가는 동안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구름> 부분」

6월의 숲길을 걷다가 짙푸른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햇살을 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이 나무와 닮았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예견한 `차례차례 죽는 일'의 한계 시점을 인류는 2050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때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인류의 생존 한계선인 평균 1.5℃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상태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사회 모든 부분에서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하다. 화석연료 사용 등으로 배출되는 온실 가스를 최대한 줄이고 불가피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는 나무를 심거나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실질적인 배출량을 0이 되도록 하는 상태를 요구하는 탄소중립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대한 경각심은 여전히 희박하고, 우리는 위기를 모른다. 여전히 기술과 경제에만 몰두해 성장과 팽창, 탐욕과 편리에만 골몰해 있는 지금, 6월의 숲길을 걸으며 인간의 도덕과 윤리, 철학이 푸른 빛깔로 묻어 있는 나뭇잎의 숭고한 호흡을 생각한다. 시인 차주일은 “우리란 발걸음을 소진한 곳에서 마주선다는 말”<두 번째 심장>이라고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이 `우리'아닌 것이 없음을 비로소 깨닫는 6월의 숲은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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