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4050 세대
이름 없는 4050 세대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1.06.08 20: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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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맛있는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봄 소풍 전날에는`제발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밤새 하느님께 기도했다.

생일날이면 엄마가 계란 후라이 한 장 벤또(도시락) 밑바닥에 깔아주셔서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먹었다.

일요일이면 빗자루를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라는 애향 반장의 방송 마이크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가서 마을청소를 했다.

고기반찬이 먹고 싶다는 투정에“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며“밥이라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툭하면 밥상머리에서 아버지한테 혼났다.

중학교에 입학해 헐렁한 검은색 교복을 입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뛰다보니 도시락 반찬 국물이 흘러나와 교과서가 빨갛게 물들었다.

매일 고추밭 땡볕 아래서 고추 따는 일을 도와야 되는 여름방학이 너무 싫었다.그래도 가끔 친구들과 개울가에 가서 피라미도 잡고 개구리도 잡아서 구워 먹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가정형편이 좋고 공부를 잘한 친구들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나머지 대부분은 공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로 뿔뿔이 흩어졌다.

교복이 자율화가 되고, 남녀 공학도 됐다. 까까머리 두발도 자율화 되고, M1소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던 교련 수업도 폐지됐다.

대학교에 입학한 친구, 군대에 간 친구, 직장에 들어간 친구....나름 모두가 성인이 되어 각자 살 길을 찾아갔다.

직장 상사 꾸지람 한마디를 못 참고 욱해서 다른 회사로 옮겨 보니 매 마찬가지다.

명절 때면 몇 시간을 서있어야 하는 콩나물시루 같은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그리운 가족과 고향친구 만날 생각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선배들에게 구걸하듯 겨우 겨우 일을 배우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월급 올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돈 좀 모으나 보다 했더니 IMF가 닥쳐 회사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됐다. 내친김에 나도 사장이 되어보고 싶어 치킨집을 개업하니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아내를 만나 자녀들을 낳고 다른 집 자녀들에게 뒤질세라 열심히 교육시키고 다 키워놓으니 컴퓨터 밖에 모르고 친구들밖에 모른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머리카락은 희끗해 지고 친구들은 정년퇴직 후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다. 이런 시절을 살아온 세대를 우리는 4050세대라고 한다.

가난했던 이 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괜찮은 젊은이들을 많이 양성하고 있는 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서야 번듯한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고 하니 청약제도는 2030세대 청년 신혼부부에게만 유리하다.

2030세대들은 열심히 일만하는 4050세대를 향해`수구꼴통'`일만 하고 삶을 즐길 줄 모른다'고 비웃으면서도 정부가 지원하는 청년 실업수당은 잘도 챙겨 먹는다.

60대 70대 장년층·고령층에 이어 군장병과 예비군, 민방위 세대인 20대와 30대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대상자가 됐다. 앞으로 남는 백신은 고위험군인 고령층 몫이다. 4050세대는 또 소외됐다.

부모님께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 마지막으로 교복을 입고 마지막으로 교련수업을 받았던 점심 도시락 세대, IMF로 직격탄을 맞은 세대, 공돌이 공순이로 가장 많이 살며 힘들어도 버티고 나라 발전에 이바지한 세대, 부모 봉양과 아직도 커가고 있는 자식에 끼어 있는 세대인 이 땅의 4050세대는 요즘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름 없는 세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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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1-06-12 02:20:05
명식아 일기는 일기장에 써라 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