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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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1.06.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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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2년 전 엄마를 모시고 보건소에서 치매 검사를 받았다. 심하지는 않으셨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말라고 병원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했다. 두 달에 한 번씩 엄마와 함께 약을 타러 동행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예전 같지 않으신 걸 알게 되었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림도구를 챙겨 드렸다. 옆에서 같이 하는 것도 아니고 말로만 `이래라저래라'하니 소용없었다.

어느 날, 친정집에 가니 엄마가 우드그림에 색칠한 장식품을 보여 주셨다. 공예활동이 직업인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재료였고 집에도 다양하게 있었다. 알고 보니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만들어 오신 거였다. 그 후로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오셨고 색칠 공부도 하셨다. 표정도 밝아 보이고 일상생활이 편해 보이셨다. 전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가족으로써 도와드릴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치매에 대해 이해하고 싶던 차에 지역 대학에서 `치매예방 지도사'과정이 열렸고 교육을 받았다.

수업을 함께 듣는 이들은 4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 정도의 연령대로 20명 정도가 거의 빠짐없이 늦은 시간까지 참여했다. 처음 몇 회기는 치매에 대한 교재 중심의 이론을 들었다. 치매에 대한 정의가 다양했지만 라틴어에서 유래된 `정신이 제거된 것'이라는 의미가 잊히지 않는다. `정신이 제거된 질병' 어쩌면 이리도 명확한지 그동안 봤던 엄마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실기수업이 이어졌는데 며칠 전 했던 기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께서 빈 의자를 강의실 앞에 놓았다. 사이코드라마의 이론가인 모레노(Moreno)가 창안하고 게슈탈트 이론가인 펄스(Perls)가 발전시킨 사이코드라마의 한 기법을 연습해 본다며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내담자가 빈 의자를 두고 마치 사람이 그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 대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역할극처럼 상대방이 함께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 빈 의자를 앞에 두고 대화하 듯 연출한다. 살아오면서 마음속에 품은 말을 할 대상을 정하라고 하셨다. 모두 눈치만 보면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개인적인 속내를 타인 앞에서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교수님이 사례를 들며 방향을 일러주자 회원 한 명이 용기 내서 앞으로 나왔다. 빈 종이에는 10년 전 본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종이를 빈 의자에 붙이자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의자를 바라봤다. 과거의 못난 자신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연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건네더니 오열하 듯 울음을 터뜨렸다. 감정이 얽힌 눈물을 흘린 후 마지막 정리로 빈 의자에 앉았다. 교수님은 옆에서 계속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질문을 하고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셨다. 그녀는 스스로 감춰왔던 감정이 정리된 듯 현재의 자신을 향해 위로의 말을 하며 끝냈다. 자신의 문제와 직면한 그녀는 한결 편해보였다. 그 뒤로 수강생들은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왔고 빈 의자에 대상자 이름을 쓴 종이를 붙여 두고 감정을 풀었다.

요즘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 나는 끝내 대상을 정하지 못했다. 밤새 뒤척이며 하지 못한 말을 되뇌었다. 다음 날 오후 수업을 끝내고 친정집을 갔다. 엄마는 바깥에서 볕을 쬐고 계셨다. 엄마가 앉아 계시는 낡은 의자를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사랑해 엄마' 소리가 아직은 입속에 맴돈다. 빈 의자에 앉힐 대상이 떠올랐다. 나의 온기로 채워진 의자에는 노구의 엄마가 앉아 계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영원히 제거되지 않은 엄마의 의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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