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되는 백신
폐기되는 백신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1.06.0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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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눈살 찌푸리게 하는 뉴스들이 전해졌다. 베트남 정부가 해외 기업들에 과도할 정도로 백신 기부를 종용하는가 하면 일부 국가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관리 미숙으로 그야말로 `피 같은' 백신이 폐기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정부의 등쌀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베트남은 최근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백신 확보를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총 1억5000만회 분량의 백신 도입을 위한 코로나 펀드 조성사업이다. 현재 베트남 인구는 9800만명. 이 정도 양이면 베트남 국민이 모두 1회 이상 접종을 할 수 있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베트남이 펀드 조성 사업비를 자국 재정으로 마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상이나 총리, 장관 등 누구의 뜻에 의해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베트남의 관료들은 너나 할 것없이 자국 기업 또는 자국 내 외국 기업들에 코로나 백신 펀드 비용을 대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6일 한 국내 언론사는 `(베트남) 총리가 직접 한국 기업들을 겨냥해 (한국이 생산 중인) 백신을 가져오던지 백신을 살 수 있는 돈을 달라고 주문했다'고 현지 소식통의 입을 빌려 전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국내 기업 관계자가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요청해 한국에서 1억원을 급히 송금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물론 이 돈은 베트남 현지 공장에서 베트남 정부의 코로나 펀드 계좌에 입금할 돈이다.

이 기업처럼 돈을 낼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베트남에 지점이나 사무소 형태로 진출한 규모가 적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경우 베트남 당국이 바라는 만큼의 `큰돈'을 마련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지 기업을 관리하는 정부 측 관료들이 코로나 펀드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며 “평소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놓은 사이라서 대놓고 거절하지도 못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아서 발만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베트남이 열을 내며 확보하려는 백신이 어처구니없는 관리 소홀로 세계 곳곳에서 폐기되는 안타까운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현 소재 대형병원과 고베시 백신 접종센터에서는 영하 70도의 저온 상태에서 보관해야 할 화이자 백신을 상온에 방치하는 바람에 1000명이 맞을 백신이 폐기됐다. 도쿄의 접종센터에서는 주사 전에 매뉴얼대로 생리식염수에 희석해 놓은 화이자 백신을 또 다른 의료진이 생리식염수를 타는 바람에 12회분이 폐기됐다.

키르기스탄에서는 병원 청소부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충전하기 위해 백신이 든 냉장고의 전기 코드를 뽑는 바람에 1000명분의 백신이 폐기됐다.

이런 가운데 백신을 구하지 못해 국제사회의 지원만 바라고 있는 나라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열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심각한 상황이다.

WHO에 따르면 최근 보름간 아프리카에서의 감염률은 전주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률은 채 2%밖에 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24%의 접종률을 기록 중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백신을 `강요'할 힘도 없고, 살 힘도 없는 나라들. 백신 부국들이 이들 나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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