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년
나의 20년
  • 최선만 충북농협지역본부 차장
  • 승인 2021.06.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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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선만 충북농협지역본부 차장
최선만 충북농협지역본부 차장

 

나는 93학번 74년생이다. 1998년 대학교 3학년 재학 중 IMF가 터졌다. 나라와 개인 모두 절망과 눈물뿐이었다. 당연히 졸업을 해도 취업은 안 될 것이기에 여력이 있는 친구들은 어학연수나 대학원으로 그 외는 휴학을 하고 공무원이나 토익공부로 세상이 다시 따뜻해지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 또한 휴학을 하고 도서관에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으나, 노는 것도 좋아하는 천성이라 몇 년째 1차도 통과하지 못했다. 2년간의 휴학 끝에 결국 아무것도 없이 2001년 2월 28세에 졸업을 해버렸다.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세상 쓸모없는 인간 같았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조교를 하고 있던 후배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농협 채용 원서가 한 장 남았는데 한번 써봐요. 학교장 추천방식이라 접수만 하면 바로 필기시험 볼 수 있어요.” `농협?' 난 취업준비도 하지 않았고, 농협이라는 곳도 잘 몰랐다. 그렇지만 뭐라도 해야겠기에 원서를 받아왔다. 알아보니 IMF 이후 3년여 만에 첫 신규채용을 하는 거란다.

하지만 입사원서를 쓰면서 나는 또 자괴감에 빠져든다. 일단 그 시절 남들이 다 하는 토익점수가 없다. 토익점수란을 깔끔하게 공란으로 비워야 했다. 또한, 자격증란에 남들 다 있는 그 흔한 운전면허자격증도 없어 또 깔끔하게 공란으로 비워야 했다.

학점도 3.69/4.5로 그저 그렇다. 결국 원서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건 이름 석자, 나이, 주소, 대졸학력에 그저 그런 학점이 전부였다.

지금 시절이었다면 서류전형에서 가차없이 떨어졌을 거다. 급한 대로 인·적성 직무능력시험 교재를 구입해 보고 대전에서 필기시험을 봤다. 시험이 얼마나 까다로웠는지 문제지를 받고 당황해서 몸에 열이 올라온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래도 회계사 시험 본다고 공부 좀 한 게 도움이 되었는지 합격을 했다. 이제 남은 건 면접. 덕분에 양복 한 벌을 얻었다. 최종까지 왔으니 승부욕이 일었다.

인물도 평범하고 키도 작으니 최대한 똘망똘망한 눈빛과 침착하고 씩씩한 답변만이 살길이라. 결국 2001년 5월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고, 그것이 내 인생 최고의 터닝 포인트자 `별의 순간'인 것 같다. 그때 무심코 원서를 챙겨준 조교 후배에게는 지금도 매년 5월이 되면 식사와 술 한잔을 쏜다.

그렇게 올해로 농협입사 20년을 맞았다. 초임지인 옥천군지부를 거쳐 충북지역본부, 서울 중앙본부 등 나름 다양한 곳에서 일하며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내 이름 석자대로 최 선 만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변치않는 것 중의 하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농협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고마움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저 별 볼일 없는 IMF시절 대졸자 중 한 명인 내가 운 좋게 농협이라는 좋은 직장에 입사해서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늘 꿈만 같고 영광이다. 농협인으로써 나의 20년을 맞아 그동안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동료 선후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신입 코흘리개 때 힘이 되고 멘토가 되어주신 분들. 일이 힘에 부쳐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함께 위로해 주신 분들. 부질없는 욕망을 좇고 있을 때 조언을 아끼지 않은 분들. 엘뤼아르의 `삶'이란 시처럼 내 몸속(인생)에는 그분들의 애정과 성원이 뜨거운 피처럼 흐르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찾아뵙거나 연락을 드리리라. 그리고 부족한 남자이고 아빠여도 늘 행복과 힘을 안겨준 아내 이상미와 딸 최윤하에게 이글을 빌어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나의 일터 나의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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