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소행성 B612는 정말 있을까
어린 왕자의 소행성 B612는 정말 있을까
  •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 승인 2021.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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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김태선 충북자연과학교육원 창의인재부장

 

“여기에 보이는 건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수많은 명언 중 하나이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갈수록, 가슴을 울리는 명언과 읽으면 읽을수록 다가오는 깊이에 울컥하게 되는 명작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엉뚱하게도 가슴 한 켠으로 살짝 드는 의문. 어린 왕자가 사는 소행성의 이름이 왜 B612이지? 생텍쥐페리가 아무렇게나 B612라고 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나?

우주의 별에 과학자들이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바이어 명명법(Bayer designation)이다. 1600년경 천문학자 바이어가 약 1,500개 정도의 별을 정리한 것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들만 정리한 이 명명법의 단점을 보완하여, 헨리 드레이퍼 목록(Henry Draper Catalog)은 수십만 개의 별을 정리하였다.

이 목록의 명명법에 따르면 백조자리의 데네브라는 별은 HD 197345라고 불린다.

그런데 스스로 빛나는 태양 같은 것만 별이라 부르는데 어린 왕자가 불덩어리에서 살 수는 없으니 여기 별 목록에서 찾으면 안 되겠지?

소행성의 경우에도 이름을 정하는 절차가 있다. 소행성은 위치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발견했다고 바로 인정되지 못한다. 먼저 임시번호를 부여하고, 궤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고유번호를 받게 되며, 심사를 거쳐 고유 이름이 정해지게 된다. 그런데 현재 확인된 소행성 이름 목록에도 B612가 없다. 생텍쥐페리가 그냥 아무렇게나 정했나 보군… 아, 그런데 왠지 너무너무 아쉽다. 저 우주 어딘가에 어린 왕자의 고향별이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실망하지 말자. 과학자들은 기발한 생각을 해냈다. B612는 16진수로 표현된 숫자라는 아이디어이다. 16진수는 10 대신 16개의 기호가 있는 숫자 시스템으로, 10진수가 0~9만 사용하여 표현한다면, 16진수는 0~9와 A~F를 사용하여 숫자를 표현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10진수 숫자 46610을 16진수로 변환하면 B612가 된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띠를 이루며 태양을 도는 소행성대에서 발견된 순서에 따라, 1993년 고유번호 46610을 받게 된 소행성이 마침 크기 약 1km로 작아 어린 왕자가 살 것 같아 적절하게 보였다. 고유번호 46610 소행성은 절차에 따라 고유 이름을 정하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베시두즈(Besixdouze, Be-six-douze)'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프랑스어로`B-6-12'를 읽은 것이다[알파벳 베(Be), 숫자 6(six), 숫자 12(douze)].

여기서 잠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1943년 발표되었다. 소행성 베시두즈(B612)는 1993년 발견되었다. 예언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1993년 실체를 얻어 탄생했으면 어떤가?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저기 어딘가에 어린 왕자의 고향별이 있음에 행복하면 된 것으로 하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이 감명 깊었던 어린 왕자의 명언을 바꿔보자.

“어린 왕자가 살아있는 것은 어딘가에 제목의 비밀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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