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꽃
계란꽃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6.0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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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휘어지고 굽은 소나무다. 얻어올 때부터 분재 철사가 여리고 작은 몸을 칭칭 감아 놓은 상태였다. 우리 집에 온 3년 후 몸에 깊게 박힌 철사들을 제거해 주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소나무는 올해로 8년째가 다 되어 간다. 이제는 제법 어른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컸다. 줄기도 굵어져 어떤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강하다. 그런데 크면 클수록 의심이 든다. 분명 조선 소나무라고 했다. 헌데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 하나같이 조선 소나무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바늘잎이 두 개이니 조선 소나무는 맞다. 하지만 잎이 뻗뻗하고 진한 녹색이며 억세니 그도 아닌 듯도 하다. 산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는 연한 녹색으로 잎도 부드럽다. 확실한 게 좋다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조선 소나무의 구별법이라고 치니 정보가 자세하게 나온다. 답을 찾았다. 바로 `해송(海松)'이라 불리는 곰솔이었다. 모래사장이나 바닷가에서 보던 해송이 우리집에서 자란다니,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강하다 했다. 소금이 가득한 공기를 마시면서도 살았으니, 우리 연못이야 얼마나 편안한 안식처였으랴.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버린 적응력에 감탄을 할 뿐이다. 그나저나 곰솔은 곧게 자란다는데 어릴 때부터 휘고 굽게 만들었느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잖아도 요즘 보면 굽고 휘었던 줄기가 많이도 펴지고 있다. 다만 내가 위로만 자라는 게 싫어 봄이면 위로 뻗은 가지는 잘라주고 연못을 향한 줄기는 살리고 있다.

삶에 적응하는 능력이 어디 곰솔 뿐 일까. 비라도 한 줄금 내리기라도 한 다음날이면 지상 여기저기에는 알 수도 없는 식물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그 중에서도 망초는 덩치도 제일 크고 빨리 큰다. 그동안 나는 망초는 우리 토종 식물이고 개망초는 귀화식물인줄 알았다. 하지만 망초와 개망초 모두 토종 식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망초', 어찌 이름을 그리 지었을까. 더구나 망초의 `망'자를 망할 `망'자로 쓴다니 더 궁금했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이라는 망초는 18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아마도 일본이 경인선 철도를 건설할 때 침목에 묻어 들어왔던 모양이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서구열강의 경제 침탈과 일본에 의한 강제합병으로 조선왕조가 멸망하던 시기였으니 갑자기 퍼지는 그 꽃이 달갑지 만은 않았을 터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망국초, 망초였다고 한다. 망초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만도 할 일이다.

빈 밭은 물론이요 빈 집 가득 제일 먼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개망초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소꿉놀이의 밥상에 단골로 올라오던 반찬이었다. 계란 꽃, 꽃이 마치 계란 후라이를 닮아 우리는 언제나 푸짐하게 계란 꽃으로 밥상을 차려내곤 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들에게는 계란 꽃이 마음을 넉넉해주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지고 변한다. 식물과 동물들, 인간까지도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고 적응을 하며 삶을 이어간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지금의 혼란도 변화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생활의 변화를 이야기 하라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이야기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디에 붙박던 묵묵히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든 작은 생명들에게 경외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 소나무가 아닌, 곰솔이면 어떻고, 망(亡)초가 아닌 계란 꽃이면 어떨까. 지금의 자리가 꽃자리라고 생각하면 그만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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