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을
어떤 마을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05.27 1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지수마을에서 가져온 하얀 목단 꽃이 피었다. 지난 4월, 재벌들의 생가가 있어 유명한 진주 지수마을에 다녀왔다. 봄이 막 시작될 때 다녀왔는데 어느새 목단 꽃이 피고 대지는 싱그럽고 논에는 모내기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봄날, 눈부신 봄볕에 내 삶도 따뜻해지는 듯했다. 문우들 넷이 의기투합해 오랫동안 벼르던 진주로 여행을 떠났다. 청주에서 진주로 내려갈수록 산야가 조금씩 푸르러지는 것이 보였었다. 감탄사를 연발해도 부족한 아름다운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서너 시간을 달려 진주 지수마을에 도착했다.

지수 마을에는 문우의 친구 스님이 살고 계셨다. 토굴에서 나와 우리를 반기던 스님도 한 송이 봄꽃처럼 작고 소박하셨다. 스님이 기거하시는 작은 토굴에는 온갖 봄꽃들이 스님과 동거하고 있었다. 우리는 봄나물로 차려진 점심공양을 하고 부자들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지수 마을은 우리나라 3대 기업 회장님들의 생가가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가옥의 외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낮은 산이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부화를 기다리는 새 둥지 형상이란다.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방어산이 먹이를 물고 마을로 날아드는 봉황과 같아 지형상 발복이 되는 곳이라 한다. 풍수 덕분인지 이 지역에서는 만석, 천석꾼이 날 정도로 큰 부자가 많았다. 세계적인 기업, 삼성, LG, 효성창업자인 부자들이 지수초등학교 동문이란다. 대한민국의 경제계 거물 30여 명이 한마을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다.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었다.

세상에 부자 되기를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다. 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그만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남아 쌓아 놓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그러나 그 욕심대로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이 지구 상에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요즈음 그저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으로 이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고 스님 살짝 귀 뜸해 주셨다. 지수마을에는 대기업의 부자도 나왔지만, 아직도 농사지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부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사는 동네는 여섯 가구가 대문 없이 사는 마을이다. 이웃끼리 서로 돕고 나누며 산다. 동네에 일이 생기면 다 같이 연장을 들고 나온다. 한 집에 한두 그루 과일나무가 있다. 그 과일이 맛있게 익으면 집집이 몇 개씩이라도 나눠 먹는다. 먹고 남아서 나누는 것은 아니다. 맛이 좋으니 이웃과 나누고 싶은 거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 든든하다.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욕심부린다고,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어떤 마을엔 부자의 기가 흐르고 우리 동네는 인정이 흐른다. 세상은 다 똑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조화롭고 아름다운가 보다. 나는 문우들과 지수마을에서 봄날의 추억과 스님의 토굴에서 몇 포기의 꽃을 가져왔다. 곳간에 쌓아 놓고 계절이 바뀔 때 미다 하나씩 빼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하얀 목단 꽃을 보며 맑고 단아했던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