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역설
싸움의 역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5.2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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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사소한 시비가 붙어서 서로 언성을 높인다. 서로 허세를 부려가면서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기세로 상대에게 폭언을 내뱉는다. 옆에서 사람들이 말린다. 놔 봐, 저놈이 말이 안 되는 짓을 하잖아. 말리는 사람이 말한다. 그래 맞아, 그렇지만 싸워봐야 뭐하겠어,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참아. 씩씩대다가 말아서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잘 참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이유 없이 갑자기 내 뺨을 때린다. 곧바로 응대해서 나도 상대의 뺨을 때린다. 상대가 묻는다. 왜 때려? 네가 나를 때렸으니까 때리지. 내가 너를 때렸다고 네가 나를 때려? 그게 이유가 돼? 갑자기 `이유가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상대를 때린 건 상대가 나를 때려서이다. 상대가 나를 때린 행위가 잘못된 행위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를 응징한 것이다. 그럼 내가 상대를 때린 건 잘한 일일까? 헛갈리기 시작한다. 때리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면 내가 상대를 때린 것도 잘한 건 아니다. 내가 상대를 때리건 상대가 나를 때리건 때리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나를 때렸을 경우,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가 대화를 할 때도 같은 종류의 문제가 생긴다. 소피스트는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칼과 창 대신에 말을 갖고 싸움을 하는 기술을 가르쳐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요즘의 법조인이나 정치인들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법조인이나 정치인들보다는 격이 훨씬 높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말로 싸우고 산다는 점에서는 같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라고 한다.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라는 건 자신의 지혜가 보잘 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치라는 말이다. 소피스트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말을 한다. 자신이 잘났다는 걸 보이기 위해, 곧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대화를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잘난 것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산다. 당연히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내세우고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대화(말싸움)를 하지 않는다.

이런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가 대화를 한다.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와 싸우려 든다. 싸울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펀치를 날린다고나 할까.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와 대화를 해서 이기면 뛰어난 소피스트가 되고, 지면 저열한 소피스트가 된다. 그럼 소크라테스는 싸움을 일삼는 소피스트와 대화를 하는 순간 소피스트와 같은 부류가 된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의 대화를 피하지 않는다. 소피스트와 대화를 하면서도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다른 철학자로 살아남는다. 곧 싸우면 다 똑같은 놈이 되는 역설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철학사상 소크라테스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없다. 소피스트들도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하면 쩔쩔맨다. 이를 보고 당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최고의 말싸움꾼(소피스트)이라고 생각하고,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이 말싸움에서 (적어도 솔직하게는) 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애초에 싸워서 상대를 패퇴시킬 생각이 없다.

때리는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때려도 상대를 때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에게 말싸움을 걸어도 싸움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와 말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를 향해 펀치를 날리지만 허공만 때릴 뿐이다. 그럼에도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에게 쩔쩔맨다. 말싸움이 아닌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상대와 말싸움을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걸까?

상대가 나에게 시비를 거는데 피하지 않고 대화를 하되 싸우지 않으면서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게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다. 그게 어떤 건지 궁금하다고? 다음 기회에.

/충북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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