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자 살자 가라사대
죽자 살자 가라사대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1.05.2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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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공자 맹자도 머리를 조아렸던 거룩한 성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죽자 살자 성현입니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성현이니 우러러 받들 수밖에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기고만장한 인간들이 제아무리 의술과 첨단과학을 발전시켜 신의 영역을 넘본다 해도 죽자 살자 성현의 손바닥을 벗어 날순 없을 테니까요.

그래요. 우리 모두는 잘났든 못났든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압축해서 보면 별똥별처럼 봄눈처럼 명멸하는 존재들입니다.

얼마를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졸했는지가 다를 뿐.

문득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독백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옛 속담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를 외쳤던 이순신 장군의 포효가 뇌리를 스칩니다.

인구에 회자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경구들이라 숙연해집니다.

특히 죽음이 그렇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삶을 영위하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맞는 이른바 순교와 자살이 그렇고 생때같은 목숨을 잃는 사고사가 그렇습니다.

`살자'를 거꾸로 하면 `자살'이 되고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는데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살자'를 마다하고 끔찍한 `자살'을 감행하는지, 어찌하여 대한민국이 자살률 세계1위국이 되고 말았는지 몹시 안타깝고 개탄스럽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와 터럭과 살갗을 손상시키는 것을 불효라 여겨 삼갔거늘 그런 DNA를 물려받은 후손들이 걸핏하면 음독해 죽고, 목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심지어 자살사이트를 만들어 동반자살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지구촌 도처에서 횡횡하는 자살폭탄테러와 암살입니다. 종교와 이념과 인종 갈등으로 야기되는 테러와 암살에 무고한 생명들이 개죽음당하는 현실 앞에 할 말을 잃습니다.

이런 제게 죽자 살자 성현이 이릅니다.

죽자 성현 가라사대.

삶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천수를 다하라 합니다. 참고 살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온다고.

비리 때문에, 신병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실연과 배신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날마다 몸과 마음을 세신하고 굳건히 하라 합니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존귀한 게 없으니 부디 자중자애하며 살라고.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이 되라 합니다. 죽음도 신의 섭리고 자연의 법칙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신심 깊은 종교인처럼 담대하게 맞으라고.

살자 성현 가라사대.

살되 참되게 살라 합니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으로 쌓은 부와 명예는 바벨탑처럼 쉬 무너지고 마니 참되게 살라고. 참됨보다 강한 것은 없다고.

살되 더불어 살라 합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고. 더불어 잘 살아야 행복의 파이가 커진다고.

살되 선하게 살라 합니다. 악은 행할수록 더 큰 악을 낳고 선은 행할수록 더 큰 선을 낳는다고.

살되 참자 웃자 주자를 벗하며 살라 합니다. 더 참고 더 웃고 더 주고 살면 날마다 건강과 행복이 샘물처럼 솟아난다고.

살되 감사하며 살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덕분입니다'를 입에 달고 살라고.

살되 사랑하며 살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이와 함께 하는 이가 보물 중의 보물이니 그를 성심을 다해 사랑하라고. 이왕지사 맺은 인연 원 없이 후회 없이 사랑하다 가라고.

돌아보니 죽기 살기로 살았습니다. 가난했기에,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기에, 아니 어떡하든 살아야 했기에 그리 살았습니다. 사랑도 직장생활도 가족건사도.

어느덧 그게 삶이고 추억임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백수지만 여유 자적하고 평온합니다.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은.

하여 보너스 같은 남은 생이 축복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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