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을 띄워라
잔을 띄워라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5.2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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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사는 것은 과연 정답이 있을까? 누구나 구속은 싫어하고 자유는 좋아한다. 늘 일에 치여 바쁘고 힘들게 살기보다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느끼면서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구속과 바쁘고 힘듦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들을 피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마음가짐으로부터 비롯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인후(金麟厚)는 그의 시를 통해 여유와 한가로움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는 물에 술잔을 돌리다(洑流傳盃)

列坐石渦邊(열좌석와변)
물살 이는 돌에 줄지어 앉으니

盤蔬隨意足(반소수의족)
쟁반에 푸성귀가 먹음직하게 차려졌네

洄波自去來(회파자거래)
굽이치는 물결이 저절로 오고 가는데

盞斝閒相屬(잔가한상촉)
물에 뜬 술잔들을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술자리의 요체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그리고 한가로움으로 압축될 것이다. 시인은 모처럼 흉금을 털어놓는 벗들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격식을 차릴 일도 없고 체면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술과 안주도 호사스럽지 않아도 된다. 주인이 정성스레 차린 푸성귀 안주로 족하다. 술 모임의 자리 또한 꾸밈이 전혀 없는 자연의 공간이다. 냇물이 부딪혀 돌아 흐르는 돌 가에 줄지어 앉았다. 술 권하는 것도 전혀 강압이 없다. 흐르는 물에 술 따른 잔을 띄우는 것이 전부이다. 마시고 싶은 사람이 술잔이 자기 앞을 지날 때 들이마시면 그만이다. 물이 흐르는 것도 술잔이 도는 것도 잔을 들어 술을 마시는 것도 모두가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한가로움의 한 단면들이 아닐 수 없다.

바쁘게 짜여진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은 누구나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틀을 깨고 나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돈과 명예에 천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구속된 삶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이럴 때 과감하게 일상의 틀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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