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어가는 삶
여물어가는 삶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5.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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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신규시절, 수습시간도 다 지나기 전에 그 당시 학교 실장님께 대든 적이 있다. 이유는 실장님께서 나에게 수학여행을 따라갔다 오라고 한 것에서 발단이 되었다. 그 당시 부장님, 실무사님은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으니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없는 내가 당첨이 된 것이다. 치기 어린 마음에 결혼을 안 하고 애가 없는 것이 죄도 아닌데 그 이유만으로 나에게 다녀오라고 한 것부터 너무 부당하다고 느꼈고, 선생님들과도 데면데면한 사이라 2박 3 동안 나 홀로 어색하게 있을 생각을 하니 저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수학여행이 제 업무는 아니잖아요! 왜 제가 가야 하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실장님이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다행히 일찍 정신 차리고 실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철없던 신규시절을 지나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굳이 배우려 나서지 않아도 삶은 내 성격, 내 성질 다 드러내며 살아봤자 결국 내 살 깎아 먹는 노릇이니 조금은 참고, 삭히면서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었고 그러고자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은 덜 여물은 것일까. 며칠 전 업자와 이야기하던 중 서로의 입장만 계속 이야기하다 결국 큰 소리가 났다. 이미 격양될 대로 격양된 상태였지만 실낱같은 이성이“그만해”“그만해” 하고 속삭였다. 소용없었다. 결국 실타래는 끊어졌고 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대고, 수화기를 들고 있던 손은 귀신이라도 본냥 덜덜덜 떨렸고, 소통이 되지 않는 업자에 대한 분노인지 결국 이렇게 상대의 큰 소리에 이성을 잃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 모를 분함이 숨소리조차 거칠게 만들고서야 나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장한이 작가의 `착각은 자유지만 혼자 즐기세요.'라는 책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어지러움 때문에 어머니가 대학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이석증이라는 병명을 확인한 후 어머니가 의사에게 몇 가지 물었다. “제가 설명한다고 다 알아들으세요?”라는 짜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라는 직장인도 가지각색 환자들 때문에 힘들겠지 라는 생각으로 불쾌함을 털어냈다. 아마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그랬을 거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나는 나의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발끈했었다. “설명한다고 다 알아듣지 못하겠지, 그래도 환자가 자신의 병에 대해 묻는데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것도 의사의 도리 아닌가? 뭐 저런 의사가 다 있어!” 하고 한참 속으로 화를 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의 상황에서도, 책을 보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에서도, 나를 깎아가며 살아야 한다는 삶이 알려준 지혜를 내가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나 스스로 반증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잔잔했던 일상 속에서 어떤 계기가 없어서 나의 부족함이 드러나지 않아서 나 스스로 이제는 여물어 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소통이 되지 않는 업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내 얼굴은 귀부터 벌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호흡 한번 하고 참아본다. 온 얼굴이 벌게져 잘 익은 사과처럼 될 때까지. 원래 사과도 빨갛게 익은 것이 가장 상품가치가 높기 마련이니,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만큼 내 인품도 가치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여물어가는 삶. 아직 멀고 먼 얘기이지만 인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보고자 한다. 나 자신에 대한 인내, 그리고 당신을 향한 인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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