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의 밤
산중의 밤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1.05.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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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땅콩 피해를 주는 건 조류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동물이 멧돼지와 너구리, 그리고 고라니다. 며칠 전의 일이다. 아침에 밭에 나가보니 무엇이 그랬는지 땅콩 심은 두둑을 마치 일구듯이 저지레를 해 놨다. 새들은 땅콩이 심겨진 천공된 비닐 구멍만 파는데 이 녀석은 두둑을 파헤쳤다. 비닐이 찢겨진 발자국으로 보아 네 다리가 달린 짐승임에 들림 없었다. 조류에 비하면 엄청난 피해다. 잡아보기로 했다. 새를 맞힐 수는 없어도 멧돼지나 너구리 고라니는 활로 잡을 수 있다. 평소 내가 쏘는 과녁보다도 덩치가 큰 놈들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윌리엄 텔이란 사람은 스위스의 국민적인 영웅이다.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에는 윌리엄 텔이라는 궁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오스트리아는 스위스 사람들이 무조건 복종하도록 거리에 총독의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를 걸어 두고 경의를 표하게 하고 있었다.

윌리엄 텔은 아들 제미와 그 모자가 걸린 거리를 지나다가 모자에 경의를 표하지 않아 즉석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그 벌은 아들 제미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사과를 할로 쏘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활의 명수인 윌리엄은 그 사과를 적중시켜 떨어뜨렸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윌리엄 텔이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는 구실로 아들과 함께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친구의 아들인 아르노르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윌리엄 텔을 구출하기로 하였다. 무사히 구출된 윌리엄 텔은 마을 사람들과 힘을 모아 총독을 물리치고 스위스 사람들은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활 하면 우리나라에도 신궁의 솜씨를 자랑한 조선의 정조가 있다. 고풍을 보면 정조의 활쏘기 성적이 나와 있는데 점수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화살 50발 중 49발을 맞췄다고 했다. 활은 1순에 5발씩 모두 10순에 걸쳐 쐈는데 정조의 세부점수(50발 중 49발 명중·점수는 72분으로 기록돼 있다. 정조가 신하들과 활쏘기를 한 뒤 역시 검교제학 오재순에게 내린 `고풍'이다. 50발 중 49발을 맞췄다는 사실을 적시하며 각 차별 점수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김문웅씨 소장) 예컨대 정조가 쏜 제1순(巡)의 세부점수는 `변(1점)·관(2점)·변(1점)·관(2점)·관(2점)'이어서 8분(점)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10순까지의 성적을 계산한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였다. 박제가의 `임금 활쏘기 기록(御射記)'을 보면 10월 30일 이후 12월 22일까지 50발 중 49발을 맞춘 횟수가 10회에 이른다.(<정유각집>) 심지어 12월27일에는 10순이 아니라 20순, 즉 화살 100발을 쏘아 98발을 맞추는 기염을 토했으니까 이것까지 치면 `49발 명중'은 12회라 할 수 있다.

정조는 활을 쏠 때마다 10순 째 제일 마지막 화살을 쏘지 않았다. 정조는 “활쏘기는 군자의 경쟁이며, 그 예법은 본디 1발을 빼고 49발을 쏘는 것”이라 했다. 문무를 겸비함은 물론 과학기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정조대왕. 정조의 활쏘기 실력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몰래 몸을 키우고, 모래주머니를 달고 생활하며 밤이 늦도록 학문에 힘쓰던 정조.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꼬리표를 달고,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역적 프레임을 씌운 노론에 맞서며 자신을 지켜내는 삶을 살았다.

멧돼지나 너구리. 그리고 고라니는 낯에도 움직이기는 하지만 야행성이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활을 들고 땅콩 밭으로 향하면서 윌리엄 텔과 정조를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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