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사라졌다
거미가 사라졌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1.05.2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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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어제는 온종일 비가 왔다. 단비인 건 맞지만 걱정이 되어 발코니를 들락날락했다. 10년 전쯤 집을 새로 지으면서 발코니와 담장 사이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부들을 비롯한 수련, 백련, 노랑 어리연과 같은 수중 식물뿐 아니라 민물붕어와 금붕어들도 산다. 크지 않은 연못이지만 멀리 나가지 않아도 연못의 정취는 나름 느낄 수 있어 좋다. 작은 연못은 사람에게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닌 듯하다. 봄이면 개구리도 찾아와 울어주고, 무더운 여름날에는 가끔씩 백로가 연못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가을이면 연못 위로 고추잠자리가 맴을 돌며 사랑의 춤판을 벌인다.

물론 거미도 연못 중앙에 키 큰 부들 사이로 집을 지어 놓고 사냥을 즐기곤 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그날은 날도 화창했다. 그런데 거미 요 녀석 부들이 아직 키가 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영역을 넓히기로 작정을 한 걸까. 발코니 난간과 연못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소나무를 지지대 삼아 거대한 집을 지어 놓고 사냥 중이다. 거미줄에는 이미 사냥감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찌꺼기가 되어 매달려 있었다. 거미는 배불리 먹었는지 가는 다리에 비해 배가 통통했다. 그렇게 줄을 타고 다니던 녀석이 비가 오는 어제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가랑비도 잠시 소강상태였다. 녀석이 궁금해 나가보았다. 그런데 너덜너덜하던 집은 어디 가고 튼튼한 거미줄이 턱 버티고 있었다. 거미줄에는 아직 아무런 먹잇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비에 어느 누가 다닐 수가 있었겠는가. 부지런하기도 하다. 비가 그치면 다시 찾아올 먹잇감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을 녀석이다. 줄을 살짝 흔드니 작은 몸집의 거미가 슬금슬금 움직였다. 집을 짓느라 체력을 다 소진한 탓인지, 아니면 먹이를 먹지 못해서인지 이렇게 거대하고 멋진 집을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왜소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진화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한 거미의 진화는 놀랍기만 하다. 먹잇감은 거미줄을 맞닥뜨려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작은 거미의 집짓기를 보며 인간의 이기심이 이렇게도 부끄러울 수가 없다. 우리는 물질이 차고 넘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도 있지만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며 욕심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바이러스도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재앙일 터이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대량으로 동물을 사육하고, 학대를 일삼는다. 어디 그뿐이랴 더 크고 많은 수확량을 위해 농약을 뿌려댔으니 그 곡식과 채소가 사람의 몸속에서 어떤 병을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생존을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작은 생물들은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경쟁을 한다.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들의 움직임이 작은 생물들의 움직임과 비교는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껏 지구를 지켜낸 것은 작은 생물들의 움직임과 희생으로 지탱해 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보슬비가 그치고 구름 속에 감춰진 해가 비치자 거미줄이 금빛으로 빛난다. 작은 거미가 뽑아낸 금실이다. 그 옛날 베 짜는 솜씨가 좋았던 아르크네가 거미로 환생했다더니 역시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나는 한참을 그렇게 아르크네의 솜씨에 넋을 잃은 채 붙박이가 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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