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
나빌레라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5.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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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내 인생드라마를 만났다. 여태껏 본 드라마 중에 이렇게 가슴이 뭉클하도록 깊은 울림을 준 이야기가 몇 편이나 있었던가. 드라마 대부분이 치정에 얽힌 불륜 이야기거나, 이권과 권력 다툼이 얽히고설킨 이야기였다. 사건 전말에 폭력이 난무하고 자극적인 데다가 협잡이 도를 넘었다. 웬만큼 해선 요즈음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빌레라'는 사람 사는 냄새가 진하게 풍기면서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하는 드라마였다. 꿈이 있었지만 잊고 있는 이에게, 사는 게 힘들어서 꿈을 꿀 수도 없었던 사람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였다. 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라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다.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고 있었다. 나의 꿈이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였다.

우편집배원을 정년퇴직한 덕출이 친구 장례식에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살아있을 때 `가슴에 품은 게 있으면 다리에 힘이 있고 정신이 말짱할 때 해라' 하는 말이 떠오르며 무엇에 홀린 듯 발레 하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스물세 살의 무용원 연습생 채록에게 평생 하고 싶어도 못했던 발레를 배우게 된다. 그 나이에 민망한 발레를 꼭 해야겠느냐며 극구 말리는 가족에게 정면 돌파해가며 무대에 오르는 꿈을 키워나간다. 덕출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점점 나빠져 아내도 못 알아볼 지경에 이른다. 힘들게 연습했던 안무도 생각이 나지 않아 꿈을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채록의 끈질긴 격려와 도움으로 무대에 올라 드디어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성공적으로 날아오른다.

극 중에서 모든 인물이 날아오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취직의 문턱에서 좌절한 뒤 본인만의 꿈을 찾아 나선 은호, 경력 단절을 딛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 애란, 어른들의 응원으로 다시 축구를 시작하게 된 호범, 수술실에서의 트라우마를 딛고 병원으로 돌아간 성관. 모두 우여곡절을 겪으며 꿈을 찾아간다. 생각해보니 드라마 속 인물이 나이고 내 자식이었으며 손주였다.

`나빌레라'는 `나비로다'의 순 우리말로 나비+종자음 ㄹ레라가 합쳐 `나비 같다'라는 의미이다.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허공을 가르는 발레리노의 몸짓을 나타내나 보다. 나비의 하르르한 날갯짓이 꿈을 향해 도전하는 날갯짓으로 환치된다.

꿈이란 가슴속에 꼭꼭 묻어주고 가끔씩 꺼내 보는 것은 아닐까. 죽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 삶의 전부이기도 하다. 쌓아도 자꾸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쌓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구에게는 거대하게 느껴질 터이다.

세상 사람 모두 오늘도 내일도 기를 쓰고 더 높이 날아오르려고 할 것이다. 날개도 꺾여보고 다리도 부러지면서도 끊임없이 도전을 멈추지 않으리라. 일흔의 덕출이 그랬듯 당신도 할 수 있다고 힘찬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도 꿈을 향해 치열하게 날갯짓을 해야겠다.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가 나에게 “날아올랐어?”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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