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의 실천 청주 밤고개 전설
인간애의 실천 청주 밤고개 전설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1.05.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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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사전에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찾아보면`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인종, 민족, 국가, 종교 따위의 차이를 초월해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꾀하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사상이나 태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가장 큰 인간애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변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청주대학교를 지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분원 앞에서 오창 쪽으로 가면 오르막길을 만난다. 이곳이 밤나무가 많았던 고개라고 해서`밤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밤고개'의 지명 유래를 통해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애와 조상의 지혜를 배우면 좋겠다.

사연은 조선시대 영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원의라는 선비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괘씸죄로 보은 회인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임금은 금부도사에게 유배지에 도착하는 즉시 죄인의 목을 베라고 은밀히 명령을 내렸다. 일행은 나흘 길을 걸어서 청주 북쪽의`율봉원'에 도착했다. 조원의는 이곳에서 하룻밤 쉬어 가자고 간청했으나 금부도사는 빨리 유배지에 도착해 왕명을 시행하고 돌아갈 생각에 이를 거절하고 출발을 재촉했다.

조원의 선비를 측은하게 생각한 율봉원의 역졸 하나가 밤을 한 바구니 삶아 와서 시장한 데 요기나 하고 떠나라고 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간애의 발로였다. 일행은 다시 앉아서 밤을 먹기 시작했는데 밤 맛이 너무나 좋았다. 그들이 한결같이 밤 맛이 너무 좋다고 칭찬하자 그 역졸은 밤의 유래를 설명했다.

옛날 박서린이란 사람이 남쪽으로 유배 가던 중 밤 하나를 역의 최고 책임자인 찰방에게 주면서“이 밤을 심어 그 밤나무의 꽃이 필 무렵이면 내가 귀양에서 돌아올 것이오.”하고 떠났는데, 그 후 찰방이 박서린이 준 밤을 심었고, 몇 년 후 그 밤이 자라서 첫 밤꽃이 필 무렵이 되자 정말 박서린이 귀양이 풀려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경험한 찰방은 이곳에 밤나무를 번식해서 해마다 많은 밤을 수확하고 있었다. 이곳`율봉원(율량동)'에서 수확하는 밤은 맛도 아주 좋아서 임금님의 진상 품목에 오르게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조원의 일행은 역졸로부터 이와 같은 내력을 들으면서 밤을 먹다가 그만 해가 저물고 말았다. 일행은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귀양지인 회인 땅으로 떠났는데, 일행이 청주 외곽 고은리에 이르렀을 때 서울에서 파발마가 달려와 어명을 전했다. 그 내용은 조원의의 누명이 풀렸으며, 한성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어명을 받은 조원의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살린 율봉원에 들러 밤을 가져다준 역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당신이 밤을 가져다주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결국 사면을 받기 전에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이곳의 밤과 당신이 나를 살린 것입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다. 그 후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율봉역 밤나무 고개는 사람의 생명을 살린 고개라고 해서 구명 고개라 불리기도 했다.

청주지명유래를 보면 반고개, 방고개라 소개하고 있다. 밤고개의 또 다른 이름이 반고개 인데, 반고개는 청주 읍성과 다른 고개 사이에 절반이 되는 거리에 있는 고개라는 설과 고갯길이 소반처럼 생긴 고개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정작 아쉬운 것은 율량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밤나무를 구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밤고개가 있는 이 일대에 밤나무 가로수를 심는 것을 제안해 본다. 국적 불명, 이유 불문의 가로수를 심는 것보다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나무를 심으면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의 작은 공터나 공원에 지명 유래와 관련이 있는 밤나무를 심어서 밤나무 공원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사람을 살린 인간애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교육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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