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2021. 5. 12.)에서 필자는 고교학점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부터는 고교 학점제를 시행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제도의 시행에 앞서 발생할 문제가 무엇인지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만약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그리고 발생할 문제를 보완하지 않고 제도를 성급하게 시행할 경우, 그 피해는 교육 정책 입안자들보다 교육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교 학점제는 분명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여기서는 제도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와 운영상의 문제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운영상의 문제는 다음 칼럼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렇다면 고교 학점제 제도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같이 고민해 보자.
먼저, 변별력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입시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니 바뀐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학업 능력이 뛰어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경쟁을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고교 학점제가 시행되면 선택과목의 경우 성취도인 A,B,C,D,E만 학생부에 기록된다. 문제는 이런 성취도만 갖고는 어떤 학생이 어느 수준의 학업 능력을 가진 학생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즉 성취도는 변별력이 낮아 대학에서 입시에 활용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학은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목에서 변별력을 찾거나 아니면 수능에 대한 비중을 높이거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고교 교육과정은 지금보다도 더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정신적 영양 불균형 문제이다. 우리가 만약 아이들을 뷔페 집에 데려가서 자유롭게 식사를 하라고 하면 아마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인 고기나 피자만 골라 먹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아이들은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과목을 선택하도록 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 다시 말해 공부하기 쉬우면서 수능에 필요한 과목만을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많은 아이들은 정신적 영양 불균형으로 건강하고 튼튼한 정신적 역량, 즉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조차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미이수자 처리 문제이다. 현재는 수업일수의 2/3만 출석하면 진급이 가능하고 무리없이 졸업도 할 수 있지만 학점제가 시행되면 3년간 192학점을 취득하고 수업 횟수의 2/3출석과 학업 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해야만 진급과 졸업이 가능해진다. 이럴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미이수자의 처리 문제일 것이다. 물론 보충 이수와 재이수 등 다양한 보완책이 마련 중이긴 하지만 실제로 성취율 40% 이상을 충족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과목별로 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미이수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시험 문제를 무조건 쉽게만 출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미이수자가 누적될 경우 교사, 학생 학부모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공동체 의식의 약화 문제이다. 고교 학점제는 공동체 의식, 즉 공동체의 가치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고교 학점제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에 토대를 둔 제도로 학생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상의 가치로 간주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개인의 가치에 의거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고, 선이며, 옳은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극단적 개인주의나 이기주의적 태도를 지닌 아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혹자는 이것이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 국가라는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