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사람
그 한 사람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1.05.16 1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나는 대체로 착하고 친절하다는 평가를 들으며 살았다. 물론 이 성향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나름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정해진 본성은 없다. 세상과 부딪히고 사람과 부대끼며 하나의 사건을 통과할 때마다 인격은 사후적으로 구성된다. 욕망대로 살라고 많은 인문학자와 심리학자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 요즘, 평안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보다 자기 자신과 잘살아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착하다는 말 속에서 느껴지는 유약함과 우유부단함, 무엇보다 시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체계가 그리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게 요즘 인식이다.

얼마 전, 라다크의 공유경제를 표방하며 담백함이 느껴지는 카페를 다녀왔다. 그곳엔 라다크 화폐가 통용되는데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져와 진열하고 다른 필요한 이에게 싼 가격에 파는 것이다. 일종의 재활용 마켓이다. 물론 라다크 화폐가 통용된다. 처음 찾아간 그곳은 흥미로웠고 여러 쓸모있는 물품을 구입했다. 그중에 그림책도 있었는데 `꼬리를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칼데곳 상을 받은 이야기책이다. 상 받은 책은 믿고 사버리는 미친? 구매력에 자제력을 잃고 구입했다. 그리고도 며칠 책장에 방치하다 꺼내보았다.

주인공은 배가 고파서 할머니의 우유를 훔쳐먹은 어린 여우지만 실제 여우의 지난 한 고난의 행군을 멈추게 해준 방앗간 주인이 빛나는 진짜 주인공으로 여겨졌다.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허락 없이 손을 댄 여우는 그것에 대한 대가로 젖소 와, 들판, 시냇물, 사랑스러운 아가씨, 보따리장수, 그리고 암탉에게 쩔쩔매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누구도 여우의 사정에 관해 관심은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욕구를 여우를 통해 채우려고 한다. 읽는 내내 등장 인물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다. 어린 여우에게 꼭 그렇게 하고 싶은지. 울먹이는 여우를 `가엾게 여긴' 방앗간 주인이 있었기에 빼앗긴 꼬리를 되찾고 웃으며 숲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착함'의 말 속엔 `상대방과 마음을 같이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의 공명이 정말로 곤란하고 아픈 이의 마음을 충만케 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애쓸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세상에는 무수한 삶만큼 봄날 개나리처럼 아픔도 널려 있다. 꼬리를 빼앗긴 여우의 사연은 여우가 거친 등장인물 모두 알고 있었다. 여우가 사정 이야기를 지침 없이 호소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귀담아들은 것은 방앗간 주인 한 사람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의 곁을 내어 줄 한 사람은 늘 필요하다.

어버이날, 아침 일찍 부모님 집에 들렀다. 거실 텔레비전 옆에 카네이션 두 송이와 안개꽃 약간이 화사한 종이에 싸여 작은 컵 속에 가지런히 있다. 병원 물리치료실에 갔더니 어버이날 기념이라며 주더란다. 소박하고 단정한 꽃다발에서 왠지 모를 착함이 전해졌다. 코로나 19로 집합금지 행정명령이 지속되면서 지난해부터 각종 졸업, 입학 행사 등 기념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연히 문 닫는 꽃집을 여럿 보았다. 병원의 이런 착한 행동이 어려운 꽃집에 응원을 보내고 물리치료의 고단한 시간을 잠시 웃게 하는 청량제처럼 느껴졌다. 자기 몫을 챙기고 밀도 있는 존재로 사는 것, 중요하다. 손해 보지 않고 작은 이익이라도 생기면 과장된 몸짓으로 간증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사는 동안 곤란한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주시라. 그것은 비단 착한 사람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