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안심관광지 보은 삼년산성
비대면 안심관광지 보은 삼년산성
  • 이미란 충북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 승인 2021.05.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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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이미란 충북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이미란 충북문화재硏 조사연구1팀장

 

가정의 달인 5월 전염병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 시기에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비대면 안심관광지로 지정된 보은군 삼년산성 탐방로를 걸으며 행복한 추억을 쌓고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도 좋을 듯싶다.

보은 삼년산성은 신라시대에 세워진 산성으로 백성이 도와 3년 만에 완성했다는 산에 있는 산성이다. 크지는 않지만, 조선에 만들어진 한양 도성과 비교하면 사뭇 다르다.

산성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 1-1번지 일대에 구릉 정상부와 사면부를 포함하고 있는 오정산(烏項山; 해발 326.2m)에 위치한다. 성의 서쪽 방면에는 금강의 지류인 보청천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보청천을 따라 남쪽으로 약 20km 지점에 이성산성(굴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삼년산성이 있는 보은 지역은 군의 북쪽에서 금강 수계와 한강 수계가 나뉘며, 속리산 자체가 한강과 금강 및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고대로부터 중요한 수로를 통한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보은은 삼국시대 신라에 있어서는 낙동강 유역의 상주 방면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금강 수계 진출의 전초기지와 같은 곳이었고, 바로 북쪽에 한강 수계인 달천강의 상류로 접어드는 위치여서 한강 수계로 가는 길목이기도 한 요충지에 해당한다. 육로 교통에서도 한강유역으로 이어지는 남북 교통로와 상주 방면에서 공주·부여로 통하는 동-서교통로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다.

산성의 초축은 `삼국사기'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고, 소지마립간 8년(486)에 30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성을 개축한 기록이 확인된다. 태종무열왕 7년(660)에는 왕이 이곳에 주둔하면서 당 황제의 조서를 받는 등 신라의 북진 및 삼국통일전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후 신라 하대의 김헌창의 난과 후백제와 고려의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그러므로 삼년산성은 문헌기록을 통해 축조시기와 운영과정이 분명히 드러나는 만큼, 삼년산성은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매우 중요한 관방시설이다.

산성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길이 약 1.7㎞ 정도로 작고 납작한 돌을 이용해 조성되었다. 현재 일부는 돌담이 무너져 옛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축조 당시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또한, 성곽을 따라 산성을 돌아 걷는 것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구간이지만 치성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보은 시내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성과 인접한 지역에는 삼년산성을 중심으로 보은 대야리 고분군이 보은군 어암리, 대야리, 성주리, 길상리, 풍취리, 강신리와 탄부면 평각리에 분포하는데, 산 경사면의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고분은 산성과 함께 분포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중부지역 최대의 신라 고분군으로 신라의 지방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이처럼 보은 삼년산성 주변으로 조성된 둘레 길을 걷다 보면 신라인에 의해 조성된 고분군과 고려시대 불상인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312호 고려 석조 여래입상을 모신 미륵전이 있는 보은사가 나오는데 이 또한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가족과 함께 도심에서 벋어나 1500년이 넘는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며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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