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은 적당한 거리
외롭지 않은 적당한 거리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1.05.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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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적당히 넣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적당한 양의 조미료를 가미한다.

그리고 그 맛이 요리사의 요리와 같은 맛일 거라 생각한다. 직접 맛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분명 다른 맛일 것이다. 적당히 넣었으니까. 적당하다는 것이 참 어려우면서도 쉽다. 하지만 정확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주기도 하는 안전한 말이라는 생각에 종종 사용한다.

`적당한 거리'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책이 있다. `연남천 풀다발'의 작가인 전소영의 그림책이다. 글도 좋았지만 그림이 참 좋다. 수채화를 좋아해 잠시 배운 적이 있었다. 좋아하지만 소질이 없음을 알고 그만두었는데 `적당한 거리'의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화풍이어서 보고 또 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위로한다. `적당한 거리'에는 식물을 수채화로 그려 소개하는 데 성격도 함께 소개한다. 식물에 무슨 성격이 있겠는가 싶지만 잘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라 말할 수 있겠다. 율마, 떡갈고무나무, 탈란드시아, 박쥐란, 로즈마리, 애니시다, 알로카시아 등등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그림만 보아도 금방 알아차릴 식물을 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서로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식물이 좋아 데리고 왔지만 잘 보살핀다는 것이 물을 많이 주어 썩게도 하고 물주는 시기를 놓쳐 말라죽게도 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좋은 관계를 갖고 싶어 가깝게 거리를 유지하며 관심을 갖다보면 관심과 사랑이 너무 지나치게 되어 관계가 어려워지기도 하고, 가까이하면 오히려 상처를 받을까 미리 적당한 거리를 두다 보니 친밀감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멀어지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관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데 나와 상대는 각각의 식물들처럼 기질, 성격, 성장 배경 등 문화적 차이가 있다. 다르다는 것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생각, 가치관 감정, 행동 등이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이지, 옳고 그름이나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나눌 수 없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며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도 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결혼으로 인해 자율적인 선택과 상관없이 결정된 관계도 있다. 갈등 없는 관계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만큼 우리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갈등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조심한다.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추느라 자신의 마음은 뭉그러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누군가는 이해받고 수용 받은 경험이 없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것은 신뢰감과도 중요한 상관관계를 갖기에 결코 행복한 삶이라 말할 수 없다.

갈등은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사랑을 느낄 때도 함께 할 때이고, 감사를 느낄 때도 함께 할 때이기에 우리는 관계를 잘 돌봐야 한다. 자기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관계를 잘 맺는다. 관계를 위해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언제나 우월한 자리에 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봄 받을 곳에 위치시키면서 타인을 갈취하는 것이다, 이 또한 내면에서 자신을 폄하하는 것이다.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상대방과 수평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적당한 거리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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