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달 5월
은혜의 달 5월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1.05.13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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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우스갯소리로 5월은 중년 가장의 허리가 휘는 달이라고 한다. 부모님에게 특별한 용돈을 드리고 어린 자녀의 선물과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매스컴에서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5월은 은혜의 달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잘 생각해 본다면 5월이 은혜의 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5월이 가정의 달이라 함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있다.

무슨 날이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날을 기념하는 것은 그날의 주체를 잊지 말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날에는 어버이를 생각하고 스승의 날에는 스승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그 주체를 생각하는 것은 기념일의 본의가 아니다. 나와 그 주체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이 기념일의 진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자녀와 나, 부모님과 나, 스승님과 나, 부처님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관계는 은혜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관계가 은혜라는 말씀은 이 세상, 우주 만유의 모든 것들은 나에게 은혜라는 말씀과 상통한다. 심지어 금수 초목도 나에게 은혜인데, 자식과 부모, 스승님과 부처님의 존재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은혜인 것이다.

어떤 이는 부모 혹은 자녀와 인연을 끊고 싶을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아 은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기에 은혜가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은혜는 주관적 정의로 파악하는 가치가 아니다. 절대적이며 근원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부모가 없다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원망을 하든 감사를 하든 어쨌든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다. 지금 내가 불행한 것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 부모 때문이 아니다. 부모는 불행과 행복, 둘 중 무엇이든 가능한 `존재'를 태어나게 해 준 것이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내가 불행하다는 것은 아주 큰 착각이다. 행복은 돈과 같은 외부의 환경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로부터 결정되어지는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 나의 `마음'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다. 존재 자체를 낳아준 것이 부모의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은혜이다.

마찬가지로 자녀, 스승, 부처님 역시 내 상황이나 경험, 신앙 유무와 상관없이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요소를 찾아보면 은혜다.

5월이 은혜의 달이라는 말은 절대적이며 근원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충분히 은혜를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대상들의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특수한 상황이나 경험이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은 부모의 은혜를 알고, 자녀의 소중함을 알고, 스승의 은혜를 알기 때문이다. 부처의 은혜는 특정 종교이니 성현의 은혜로 생각하면 된다. 부처든 예수든 소태산 대종사님이든 시대의 성현들이시고 그 성현들이 아니라면 세상의 도덕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퇴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에는 `知恩報恩(지은보은)'이라는 교리가 있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은혜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갚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은혜를 알면서도 갚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직무유기이다. 온통 은혜이지만 누구나 알고 나도 분명히 알고 있는 은혜를 모른 척하지 말자. 5월엔 그 은혜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고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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