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오월
창밖은 오월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1.05.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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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라일락 향기가 짙어 가는데/너는 아직 모르나 보다/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수필가 금아 피천득 선생이 쓴 시의 일부분이다. 선생의 유일한 창작 시집 `창밖은 오월인데'에 수록된 시인데 해마다 오월이면 한 번쯤 꼭 꺼내 읽어보는 시집이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초록으로 눈이 부신 데 교실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있다고 머릿속에 들어올까. 라일락 향기를 채 맡아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어느새 오월에 다다르고 이 계절을 즐기는 것이 교실 안에 있는 것보다 배울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선생은 알려 주고 싶은가 보다.

창밖은 이미 오월의 중심에 들어 서 있다. 그야말로 나무마다 연둣빛 작은 잎들이 오종종하니 색을 덧입고, 그 곱던 분홍빛 벚꽃 진 자리에 초록이 들어앉아 하늘도 땅도 온통 푸른 계절로 꽉 채우고 있다. 금아 선생의 문학적 핵심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간이다. 만물이 자라 쉼 없이 생동하는 계절, 일 년 열두 달 중 가장 많은 기념일을 함께 하는 오월은 자연만큼이나 사람도 바삐 움직이며 서로의 삶에 의미를 담아내는 달이다.

지난 어린이날에는 대학생인 아들에게 특별용돈을 보내주었다. 이미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의 대열에 선 나이이지만 부모 눈에는 한없이 어린 이 녀석이 어린이날 하루만이라도 학업적인 스트레스와 아르바이트라는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 가볍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 녀석은 만날 어린이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며 수화기 너머로 감사하단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에 맞이한 어버이날에는 양가 어른들을 찾아뵈며 따뜻한 점심을 대접해 드렸다. 꽃집에 들러 붉은색과 분홍빛이 어우러진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사고 이 계절에 맞는 화사한 옷 한 벌씩과 용돈을 봉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부모님들께서는 이렇게 얼굴 한 번씩 보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물론 나와 남편도 아들로부터 가슴에 꽂는 붉은 카네이션과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선물로 받았다.

이제 앞으로 스승의 날이 다가오니 이번 한 주는 학창 시절 은사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해야겠다. 혼란스럽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무사히 잘 지날 수 있도록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신 나의 은사님께 감사함을 표하는 날이 될 듯하다. 또 그다음 주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으니 특별히 절에 다니는 신자는 아니더라도 부처님 오신 참뜻을 나름대로 기려볼 참이다.

그야말로 각종 행사로 정신없이 분주한 달이다. 누군가는 하도 행사가 많아서 지갑이 빈곤해지는 달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사람의 향기가 가장 왕성한 달이 오월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우리에게 부모라는 이름을 달아준 내 아이를 한 번 더 돌아보는 달이고, 부모님께는 감사함을 전하는 달이며, 사랑으로 보듬어 흔들리지 않는 길을 걷게 해 준 스승님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오월이다. 눈이 부시게 푸른 오월이다. 더없이 아름다운 날을 배경 삼아 감사 인사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라일락 잎사귀 모양이 심장인 것을 눈으로 보고 누구든 내 아이에게는 사랑을, 내 부모에게는 감사를, 그리고 존경과 은혜가 함께 어우러진 사람 향기 가득한 오월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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