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가 꽃을 피우기까지
콩고가 꽃을 피우기까지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5.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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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나무에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흔히 보아온 고무나무처럼 잎이 넙데데하다. 키로 보아 오랜 시간을 정성스럽게 가꾸어 온 듯하다. 이런 나무에 꽃이 피는 줄 처음 알았다. 무성한 잎 사이로 숨어 불그레한 꽃잎이 속살처럼 하얀 수술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수줍은 소녀 같다.

이 꽃은 관심을 주어야 볼 수 있다. 까딱 한눈을 판 사이 지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번 피면서 꽃망울이 터지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다. 그렇게 힘들게 피운 꽃을 하루만 보여주고 꽃잎을 꾹 닫아버린다. 긴 시간을 인내로 지켜본 주인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열흘 붉은 꽃은 없다지만 하루는 야속하지 않은가.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나만 바라보라는 욕심 많은 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무색하게 하는, 한 치의 눈길도 빼앗기기 싫어하는 꽃. 진심으로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콩고는 그런 꽃이라고 말했다.

하루만 보여준다는 꽃이 마침, 오늘 꽃을 피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식당주인이 우리를 반색한 이유다. 마치 친한 사이인양 손을 이끌어 어리벙벙했었다.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는 일보다 꽃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아 왔으니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자식을 잘 키워놓고 대견해하는 엄마라고나 할까. 내게는 그런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

하루하루 잎이 크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물을 주고 얼까봐 온도도 신경 쓰면서 꽃이 피기까지 쏟은 정성이 들뜬 말로도 느껴진다. 더디게 피는 과정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을 터이다. 꽃대를 올렸을 때는 신기하고 대견했지 싶다. 이제나저제나 꽃망울을 터트리기를 기다렸으니 드디어 환호가 터졌을 것이다. 혼자 알기에는 벅찬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반려식물도 이러하거늘 자식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꽃의 주인을 보고 있자니 지인도 또한 그러했으리라. 평소에 늘 당당한 모습이 부럽고 좋았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나는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엇이 저리도 그녀를 당차게 하는지 궁금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슬하에 딸 둘이 다 예쁘다. 아들만 있는 나로서는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존경스럽다. 큰 애는 승무원으로, 작은 아이는 기자로 어엿하게 키우느라 들인 정성을 누가 알랴.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 하나하나의 고비마다 애태웠을 엄마의 노고가 심연에 와 닿는다.

누구보가 벅찰 그녀의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3년이나 지난 일을 이제야 알고 뒷북치는 나에게 아직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어찌 안 그러겠는가. 이토록 가슴 뛰는 희열이 또 있을까.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게 없는 부모는, 누구랄 것도 없이 그 기쁨이 내 일처럼 뭉클하다.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억척스럽게 돈을 벌려고 애쓰지도 않고 고생을 감수하면서 살지 않는다. 더 일찍 포기하고 빨리 손을 놓는 일이 많은 법이다. 자신과 타협하며 편안함에 안주(安住)했을 테지. 모두에게 자식은 참아야할 이유고 견뎌내는 힘이니까.

꽃은 그냥 피지 않는다. 그 안에 많은 노고가 숨어있다. 꽃이 져서야 잎이 보이듯, 해마다 꽃을 보고서야 알겠다. 겨우 내내 모진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낸 나무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음을, 마지막 꽃샘추위까지도 잘 이겨내어야 비로소 봄볕이 배어들어 꽃을 피울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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