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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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1.05.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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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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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불쑥 준수 앞에 앉았다. 주한이었다. 빗소리 홀로 젖은 술자리에 불청객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준수보다 나이가 적은 젊은 이웃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이혼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벌써 두 번째였다. 그런데 왠지 그런 그의 말이 푸념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심각하고 신중해야 할 말을 너무 쉽게 내뱉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그가 첫 번째 이혼을 하고 난 후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큰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 또한 둘째 아이는 툭하면 아이들과 싸웠다. 그리고 노모는 쇠약해져 도움이 필요했다. 주한은 모든 것에 이혼을 탓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정이 파탄 나고 말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 지인들 중에서 누군가의 주선으로 다시금 새로운 가정이 꾸려지고 겉보기에는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또 이혼이라니 시시비비를 떠나 안타까웠다. 어찌 보면 한편으로 남의 일 같지마는 아닌듯했다. 준수에게도 지난날의 그럴만한 우여곡절과 흔적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준수는 그 심각성에 동정이 가는듯했다. 낮부터 후줄근하게 내린 봄비는 밤이 되도록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봄비에 괜한 우울감이 실려와 공연히 심란하던 차였다. 아닌게아니라 요즘같이 어려운 세상이야말로 핑곗김에 술 한 잔으로 묻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주한을 보게 되었고 앉자마자 그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준수는 그들이 왜 이혼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다음이 궁금했다. 그에게 전에 있었던 일이 있듯이 이혼을 하는 것은 그들 두 사람의 자유일지 몰라도 그로 인해 애매한 사람들과 엉뚱한 일들이 생기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이혼의 문제는 부부 두 사람의 일로만 끝난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가정이라는 배 안에 가족이라는 구성원들도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된다면 가족구성원들은 경우에 따라 커다란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주한은 그런 염려를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비는 제법 밤늦도록 주룩주룩 내리는데 어디선가 주한을 애타게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 내용이 공개될 정도로 크게 울렸다. 주한은 마치 자신이 그들의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도 알고 있는 듯 일러 주다가 준수에게 온다간다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가버리더니 소식이 끊어져 버렸다. 준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남의 일에 끼어들어 아픔을 떨쳐버리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빗속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표류된 듯 보였다. 술잔의 뒷맛이 씁쓸했다.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결혼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혼을 결단하게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결혼과 이혼을 어느 한 쪽으로 편중되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잘잘못을 결코 인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많은 것들이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이혼이 미치는 영향이 가족에게 가장 크다면 클 것이다. 그 후유증은 분명 이혼이 낳은 또 하나의 우려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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