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 틈새, 새집
헌집, 틈새, 새집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1.05.11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파닥파닥! 짹짹짹! 푸드덕푸드덕. 찍! 찍! 짹짹!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휴일에만 여는 문소리에 반가움의 표시인지 경계의 표시인지, 인기척에 놀랄 것 같아 조심스레 열었건만 어찌나 잠귀가 밝은지, 갑작스런 소란은 도통 잦아들 기미가 없다. 결국 열었던 현관문을 닫고 뒷걸음질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분명 서류상 내 명의의 집인데 집주인 행세를 못하게 만드는 녀석들은? 무슨 새인지도 모를 녀석들이 주방수납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낡은 건물, 외부와의 차단에 빈틈이 생긴 것이다.

외부 환풍구를 통해 들어와 둥지를 만들고 매년 이맘때면 알을 까서 연신 먹이를 날라 먹인다. 이젠 식구가 늘어 여기저기 새집이 늘어 매년 더 부산스러워지는 듯하다. 언질도 계약도 없이, 이러다 완전히 집을 빼앗기게 생겼다.

소심하고 못난 사람 같으니라고. 뒷걸음 끝 고개를 돌렸을 때, 집에도 못 들어간 못난 사람을 위로하듯 아침 햇살과 함께 미세한 수분을 흩뿌려주는 나무. 소심한 사람은 전나무 밑 나무계단에 다소곳하게 앉는다.

잔음인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맴돈다. 먼 산을 보며 한참이 흘렀을까? 찍! 찍! 찍! 소리 대신 가벼운 화음의 찌르르~ 새소리와 꾹 구구 꾸 꾸 구우~, 꿩 꿔엉~. 존재가치 선언이라도 하듯 구구절절하면서도 단호하고 우렁차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는 시간차를 두기도 하고 중복되어 화음을 만든다.

결국, 집에는 못 들어가고 건물 언저리에서 배회하듯 사부작사부작 소일이다. 무성하게 자라있는 풀을 뽑고, 겨우내 깔렸던 볏짚을 걷어낸다. 일을 하던 중 화들짝 놀랬다. 배가 잔뜩 부른 주먹보다 큰 참개구리가 볏짚 밑에 몸뚱이만큼의 땅을 파고 은신 중이다. 정확하게 자신이 들어갈 만한 틈을 만들었다.

볏짚이 두텁게 깔린 곳에는 눈비가 오고 시간이 지나며 잘게 부서지고 퇴비화되기 전 단계, 그 밑에는 사방으로 기어오르고 먼지를 일으키며 줄행랑치는 쥐며느리가 있다. 무광회갈색의 일곱 마디, 마디마디마다 한 쌍의 다리를 가지고 매스 게임을 하듯 율동적이면서도 일사불란하게 다리를 움직인다. 그리고 또 한 녀석, 누아르의 세계에서 두더지의 공격에 숨쉬기 좋은 흙을 만들어내는 지렁이가 있다. 지렁이가 만들어낸 떼 알은 비가와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다. 볏짚을 들추자 놀랐는지 구멍 속으로 재빠르게 숨는다.

흙은 찰기가 많아 돌덩이다. 퇴비를 펴고 갈아엎어도 비가 오고 나면 여전히 호미 끝이 튕기듯 반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빈틈을 만들기로 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틈새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숨을 쉴 수 없는 다져진 흙은 작물이 자라기 어려운 땅이다. 워낙 단단한 흙이라 인위적으로 버슬버슬하게 만들어내는데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로 잡초였고, 두 번째가 볏짚이었다. 볏짚 밑으로 많은 것이 찾아들었고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잡초는 물을 찾아 사방으로 뿌리를 뻗으며 길을 냈고, 기고 뛰는 녀석들은 은신처를 만들고 먹잇감을 찾고 섭취하며 길을 만들었다. 많은 것이 이렇게 저렇게 뚫린 틈새로 공기가 통하고 물이 흘러들어 가고 양분이 스며들어 깊숙하게 개간된 땅이 된 것이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을 하찮은 것이라 한다. 버려지듯 평일 찾지 않는 건물과 땅에 하찮은 것들이 자리하면서 지속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빈틈없이 쥐어짜듯 오만한 기준으로 채워 넣으며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다진 곳에 하찮은 것들은 자리를 지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