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
봄까치꽃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1.05.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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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장민정 시인

 

집으로 배달되는 작은 월간지를 펼쳐 보다가 깜짝 놀랐다. 보랏빛 꽃잎에 수술이 있는 안쪽으로 흰빛을 띤 깨알 같은 꽃들,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사진 밑의 註에 개불알풀이라 적혀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 때 밭고랑에서 많이 보아왔던 5mm 정도의 작디작은 소당깨 나물이 아닌가? 얘가 개불알풀이야? 어처구니없는 마음으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한 동네에서 매일 만나고 지나치던 무심한 이웃을 오랜만에 어쩌다 도심의 길거리에서 맞닥뜨린 먹먹한 심정이다.

개불알풀이라니, 누가 그런 고약한 이름을 안겨주었는지 속이 다 아프고 쓰리다. 중국에서는 지금地錦(땅의 비단)이라 부르고 우리나라 일부 지역에서는 봄까치꽃이라고도 하며 봄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 한다. 전라도 평야지였던 우리 동네에서는 어린아이들 나물 바구니에 담기던 소당깨 나물이다. 너무 흔한 것이어서 으레 우리나라의 토종일 것이라 지레짐작한 내 생각도 틀렸다.

학명이 Veronica didyma lilacina, 우리 말로는 “잎이 마주난 라일락 빛깔의 성 베로니카”란 고상하고 거룩한 이름의 귀화 식물이란다. 내 기억 속에 개불알풀은 소당깨(솥뚜껑) 나물이다. 왜 소당깨라고 했는지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는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겨울을 이기고 대지에서 처음 솟구치는 고귀한 새싹임에는 틀림없는데….

보름 전, 세 번의 나물국을 먹어야 한다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꼬드김이 아니어도 겨우내 방안에 갇혔던 답답함을 훌훌 떨쳐버리듯 설을 갓 지난 밭으로 나물 캐러 다닌 적이 있었다. 찬 바람이 아직도 매서운 바늘처럼 날카롭게 살 속으로 파고드는 벌판에서 이제 마악 돋아난 밭고랑의 파란 새순들, 양지쪽 밭두렁에 굳건하게 박힌 나숭개(냉이)와 파릇파릇한 소당깨 나물뿐인 대보름 전의 나물 바구니는 겨우 밑바닥만 가릴 정도로 가벼웠음을 기억한다.

초봄에 돋아난 새잎은 다 먹을 수 있다던가? 집에 가져오면 어머니는 데쳐서 나물을 무치셨고 된장국을 끓이기도 하셨던 그 나물, 겨우내 묵혀둔 밭고랑을 파랗게 덮고 있던 소당깨 나물은 3~4월쯤 밭을 갈아엎기 전까지 깨알만 한 꽃을 오밀조밀 가득히 매달고 있곤 했다.

까마득히 잊었던 친구를 찾은 것처럼 요즘 잘 나가는 P시인을 생각했다.

내가 직장 일로 가 있던 깊은 산골의 소년이었던 그가 신춘문예를 거쳐 시집으로 신문과 잡지에서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것이 대견하고 흐뭇해서 내 일처럼 친구들에게 자랑자랑하고 다녔는데 문득 그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순박하고 꾸밈없고 찬바람에 시달린 여린 모습이 비슷한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의 시에서 클로버꽃을 반지꽃이라 했었다. 어린 시절 클로버의 하얀 구슬 같은 꽃을 따서 반지를 만들던 생각이 저절로 드는 따뜻한 이름인 것이다. 예쁜 꽃을 개불알풀이라니, 망측한 이름을 듣고 사람들이 얼마나 민망해할까 생각해 본다.

소당깨 나물이 쇠어서 온몸에 다닥다닥 꽃을 매달게 되면 슬그머니 겨울은 꼬리를 사리고 잠적하듯, 어쩌면 겨울과 싸워 이기고 돌아온 꽃, 작아도 당당한 그에게 개불알풀이라는 이름은 정말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부터 나는 봄까치꽃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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