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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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희 기자
  • 승인 2021.05.11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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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공진희 부장(진천주재)

 

머릿속이 뿌연 안갯속을 거니는 것처럼 어지럽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대학노트를 모아놓고 한페이지, 한페이지 메모를 훑어 보았다.

퍼뜩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급히 휘갈긴 메모부터 책에서 튀어나온 문장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떠오른 영감,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옛 소련 체제에서의 삶을 묘사한 듯한 아래 문장이 유독 눈에 띈다.

`가장 비현실적인 관계(그녀가 알지 못하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죽음)에 가장 구체적인 감정(눈물 속에 구체화된 감정)을 씌운 것처럼, 가장 구체적인 행동에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불만족에 정치적 명칭을 붙일 줄 알았다. 소련놈의 죽음에 눈물을 펑펑 흘리다니 자기 아버지 죽음보다 더 슬픈 모양이다.

친구가 형님을 만났다. 사회에서 만나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고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30년. 그 형이 세월의 이끼와 믿음의 두께를 담은 봉투를 건넸다. 얼마 전 큰 수술을 마친 친구의 아내는 통원치료와 입원치료를 번갈아 받으며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러나 30년을 이어온 이들의 신뢰관계는 단 한 순간에 깨어져 나갔다. 둘 사이에 커다란 틈을 낸 것은 TV화면이었다.

화면 속에 잠깐 스쳐 지나간 장면은 재임기간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다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전임 검찰총장의 모습이었다. 그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두 사람의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오자 혀는 칼날이 되어 서로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결국 친구는 그 형님이 건넨 봉투를 식탁 위에 던지며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30년 동안 쌓아온 신뢰의 탑은 단지 이미지로 존재하는 한 인물에 의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A와 B는 죽마고우다. 초중고 12년을 함께 같은 학교에 다닌 동기 동창이다. 상대방의 아내를 서로 제수씨라 부르고 자신이 형님이라고 농을 주고받으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이다. 그런데 지난 총선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달랐다. 반갑게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그들의 화제가 서로의 안부에서 정치로 옮겨가자 웃음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상대방을 향한 분노와 독설이 차지했다. 그들의 아름다운 50년 우정은 주먹질로 끝이 났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는 `명상록'으로 잘 알려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등장한다.

죽을 날이 머지않은 그는 막시무스를 총애하여 아들이 아닌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로 한다.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이에 질투와 분노를 느껴 아버지를 살해하고 황제의 지위를 이어받는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와 그의 가족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겨우 살아남은 막시무스는 노예로 전락하고 투기장의 검투사가 된다.

영화에서 검투사들은 주인의 명에 따라 검투사들끼리 혹은 로마병사들과 싸운다. 목숨을 건 싸움이다. 노예 신분인 검투사들은 콜롯세움에서 용감하게, 때로는 숭고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주인인 귀족의 입장에서는 검투사 경기도 술과 음악처럼 그저 오락에 불과할 뿐이다. 막시무스가 말을 걸어왔다.

그대들, 진정 자유로운가?

그의 질문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검투사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인의 뜻에 따라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념과 진영의 노예가 되어 상대방의 가슴에 분노를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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