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있다는 것에 대하여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1.05.0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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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매주 돌아오는 휴일, 별다를 것 없는 오후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주말에도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해지다 보니 항상 베란다 창문으로 바깥만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짠해 놀이터로 나선 길. 화려한 놀이동산도 아니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도 아니건만 그저 집 앞 놀이터일 뿐인데도 아이들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 듯 사뿐거렸다. 무엇이 그리 좋을까.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면서, 중심도 못 잡으면서 혼자 그네를 타보겠다고 버둥거리면서도 아이들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살랑살랑 불던 바람이 조금씩 조금씩 그 기세를 드러내려고 하자 즉각 코를 훌쩍거리는 둘째 아이를 아빠와 함께 집으로 들여보내고 겨우겨우 그네에 올라탄 첫째 아이 등을 한번, 두 번, 세 번이나 밀었을까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다. 쿵! 그리고 또 쿵!

전쟁이 나면 이런 모양새일까. 내 발끝까지 날아온 놀이터 울타리 파편,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 울음소리와 놀란 엄마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순식간에 몰려든 구경꾼들과 여기저기 119와 112에 신고하는 목소리까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내 품으로 뛰어든 첫째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사고가 난 곳에서 가장 먼 벤치에 앉았다.

사고가 난 차량에서 힘겹게 내린 운전자는 딱 봐도 나이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셨다. 사고의 원인이 차체 결함인지 운전 부주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건 차량이 놀이터로 돌진했고, 그로 인해 울타리 세 개가 완전히 부서져 놀이터 전방 공터에 흩뿌려졌고, 그러고도 멈추지 못한 차량이 그 앞에 나무를 박고서야 멈추었다는 것이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차례로 도착해 현장이 수습되고 부상자가 이송되고 나니 그제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곳에 울타리가 없었다면, 그리고 차량에 부딪힌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기라도 했다면 공터 바로 앞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나와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필 그날따라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네를 둘러싸고 있던 전방 울타리도 다 뽑혀진 상태였는데 말이다. 또,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놀이터 공터에서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하고 놀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부상자가 나왔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상조차 하기 싫은 많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이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즘이다. 이제는 아픈 이름이 되어버린 정인이부터 사인조차 모르는 손정민군까지. 그리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코로나19 감염과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수많은 소중한 목숨이 오늘도 어제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누가 죽었구나.” “오늘은 몇 명이 확진되었구나.” 하고 가볍게 넘긴다. 나 역시도 그랬었다. 끔찍한 사고가 나와 내 주변에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코로나19가 내 코앞까지 다가오지 않았으니까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도 마치 다른 나라 얘기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놀이터 사고 현장 목격 이후로는 마음가짐을 다르게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삶을 마친 이들에 대해 조금 더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내가 이렇게 아무 일 없이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감사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문구를 가슴에 깊게 새겨보고자 한다. “당신이 헛되이 보내버린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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