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5월
죄송한 5월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1.05.05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감사해야 할 일이 많은 5월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까지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기도 바쁘다.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마음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어린이날이라고 자녀 데리고 야외에 나가자니 눈치 보이고, 어버이날이라고 부모와 함께 밥 한 끼 먹는 것도 폐 끼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역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가 편치 않다.

어찌 보면 우리는 코로나19와 1년 넘게 사투를 벌이다 보니 감사한 마음보다 눈앞에 놓인 생계를 걱정할 만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서 제 한 몸 챙길 여력조차 없으니 당연히 부모도, 형제도,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니 죄송스런 5월을 보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지난 4일 열린 5개 부처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에 나온 이들도 죄스런 행동에 연신 사과를 해댔다.

1000여 점이 넘는 인테리어 소품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아내 때문에, 국비로 떠난 해외 출장길에 자식을 동행해서, 수십 명의 제자 논문에 남편 이름을 끼워넣어서, 특별 분양받은 아파트에 살지도 않았는데 수억 원의 차익을 챙겨서 그들은 고개를 숙였다.

장관 임명 때마다 지겹도록 들었던 말을 이번에도 앵무새처럼 내뱉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다” “사려 깊지 못했다”“관행이었다”“송구하다” 등등.

장관 후보자의 가족으로서는 자상한 남편, 멋진 엄마, 능력 있는 아내, 성공한 부모로 치켜세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저렇게 살아도 장관 후보자가 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일까 나쁜 나라일까”답을 못 찾아서다.

도덕성을 갖춘 장관을 기대하는 것조차 사치인 세상에서 20~30대 청년들은 기댈 그늘이 없다.

부모찬스, 조부모 찬스도 없으니 청문회에 앉아 있는 장관 후보자들의 얘기도 귀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내 집 마련의 꿈도 포기한 청년들은 요즘 할머니 감성에 열광한다.

신조어로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의 합성어·어르신 감성이 담긴 음식과 패션)도 등장했다.

이들은 어르신들이 즐겨 먹는 양갱을 간식으로 먹고, 꽃무늬 자수가 새겨진 가디건이나 실로 짠 조끼 일명 할미룩을 즐긴다. 할미룩의 장점은 촌스럽지만 편안하고, 세련되지 않지만 포근하다. 물론 숨기고 싶은 체형도 넉넉한 크기로 감싸준다.

주름진 얼굴, 구부정한 허리로 고된 삶을 지탱해온 할머니들이 지치고 힘든 손주를 품에 안듯 어쩌면 청춘들은 옛 감성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어버이날도 올해는 죄송스런 날이다.

만남이 죄가 될 수도 있다 보니 자식도 부모도 보고 싶은 마음을 들킬까 봐 걱정이다.

유진그룹이 최근 계열사 임직원 1106명을 대상으로 가정의 달 관련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2.9%는 어버이날 등 기념일에 외식이나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서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조사한 결과(50.6%) 보다 12.3%p 증가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찾아뵙는 횟수가 예년에 비해 줄었다는 응답자는 72.5%를 차지했다.

가정의 달 예상 경비는 57만5000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76만원)보다 18만5000원 줄었다.

선물 구입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6.5%가 비대면 방식인 온라인몰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마음대로 못 봐도 자식의 죄송스런 마음은 부모를 향해 있으니 용서가 된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들의 죄송스런 마음은 국민이 아닌 자리에만 눈독을 들이니 한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