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보다 무책이 문제다
무능보다 무책이 문제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1.05.02 20: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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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안이 그제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세종의사당 설치가 담긴 국회법 개정안이 국민의힘의 반대로 운영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률 검토와 당내 의견 수렴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국민의힘의 입장이라고 한다. 여당이 뭔가 시도하면 일단 반대부터 외치고 보는 게 이 당의 습관이 돼버렸다고 하지만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때 이 당의 홍준표 후보는 국회 분원이 아니라 국회를 통째로 세종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총선 때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지금 와서 당내 의견 수렴 운운하는 것은 지키지도 않을 공약으로 충청권 유권자들을 우롱했다는 자백과 다름없다. 더욱이 국회법 개정안은 민주당과 함께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법률 검토가 필요하다는 핑계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의힘은 개헌 절차가 필요하다는 몇몇 로펌의 의견을 빌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열린 국회 공청회에선 “서울의 수도 기능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국회 상임위 일부를 이전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다”는 법리적 해석이 늘 우세했다. 지난 2월 공청회에서도 세종에 부처가 있는 국회 상임위 11개 이전은 합헌이라는 법조계 의견이 제시됐다.

부산 가덕도신공항을 밀어붙일 때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포함해 관련 법들을 뛰어넘자며 번갯불에 콩을 볶았던 정당이 국민의힘이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해 민주당이 발진한 버스에 올라타 자기들이 주인인 양 운전석을 차지하고 앞장을 서는 낯뜨거운 장면이었다. 그래 놓고 세종의사당 앞에서는 법 타령이다. 말라 비틀어져가는 지방에 20조원 이상을 들여 국제공항을 짓는 것과 지방분권의 구색이라도 갖추자는 국회분원 이전은 당위성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국민의힘은 내년 대선과 지선에서 충청권 대표공약으로 세종의사당을 다시 울궈먹을 것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될 줄 알면서 지금은 딴지를 걸고 본다. 존재감을 알릴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여당이 시작한 일 낚아채 주도권 잡은 가덕도 신공항 빼고는 이 당이 역동성과 기민성을 발휘한 장면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7개월 동안 25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두 달에 한번 꼴로 크고 작게 정책을 손봤다는 얘기다. 대부분 정책이 헛발질로 끝나 참담한 평가를 받지만, 나름 고심하고 분투해온 여정은 인정할 만하다고 본다. 덕분에 지난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줍다시피 한 국민의힘은 과연 부동산 관련 정책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많은 국민은 서울에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한 꿈이 돼버린 현실에 대한 국민의힘의 입장과 대안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파트 투기에서 밀려난 20~30대가 이젠 암호화폐로 몰려가 일확천금을 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이 당에서는 그냥 시장에 맡겨두자는 한가한 지적 외에 국민이 공감할 만한 어떤 아이디어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전세금을 일시에 23%나 올려받은 주호영 전 원내대표가 해명한 발언에서 국민의힘의 입장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시세가 형성되면 시세대로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고 했다. 그저 부동산 시장의 추세에 맡기자는 얘기다. 또 “낮게 받으면 이웃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고도 했다. 피해가 갈까 봐 걱정되는 그의 `이웃'은 전세금이 오를까 전전긍긍하는 세입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집주인들이라는 얘기다.

시장주의 원칙은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가 취해온 핵심 경제정책과 기조들을 흔들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무기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을 시장경제론을 앞세워 반대하고 공격했다. 국민의힘이 걱정되는 것은, 이 편안한 주장을 방패 삼아 무능보다 무서운 무책(無策)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언가를 하고 나서 무능하다는 평가라도 받으라. 대안도 책략도 없는 어깃장 정치, 무위의 정치로는 정책정당, 대안정당,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보궐선거를 전후해 상승하던 지지율이 다시 하락세로 꺾이는 이유를 당신들만 모른다. 제발 일을 좀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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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2021-05-03 11:02:16
바른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