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이름으로
나무의 이름으로
  •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 승인 2021.05.0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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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박윤미 충주노은중 교사

 

열 살도 안 됐던 거 같다. 아주 어렸을 적, 아빠는 내 이름이 `고목 나무에 빛이나 아름답다'라는 뜻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 친구들 이름은 대부분 `순, 자, 숙'으로 끝난다. 이에 비하면 내 이름은 그 당시로는 꽤 신경 쓴 예쁜 이름이다.

아빠에게 나는 꽤 의미가 있는 아이구나 하는 커다란 안도감과 뿌듯함이 자리 잡았지만, 어린 마음에는 싱싱한 나무가 아니라 고목 나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내게 특출난 재주가 없다고 생각될 때나 영특함, 인내, 성공 같은 부분이 부족하게 생각될 때는 내 이름의 뜻을 되짚어 보며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항상 나무를 유심히 본다. 용궁처럼 충주댐의 물속에 지금도 그대로 있을 것 같은 마을에 곳곳의 나무들 모습이 사진처럼 생생하다. 우리 집 뒤꼍에 서 있던 커다란 고욤나무, 키 작은 앵두나무, 할머니 집 울타리 밖에 서서 하루에 서너 번 오가는 버스를 반기던 커다란 버드나무, 신작로에 열 지어 5월이면 하얗게 꿀 향기를 풍기던 아까시나무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하늘 향해 크는 미루나무들, 학교 울타리가 되어주던 향나무들과 운동장에서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던 플라타너스...

요즘엔 나무들을 더 유심히 본다. 특히 남산에 오를 때면, 한발 한발 나무를 향한 발걸음이다. 입도 꼭 다물고 숨도 차분히 고르며 눈으로, 마음으로 나무에 말을 건넨다. 얼마 전부터 유달리 마음을 끄는 나무가 있다. 오동나무다. 여름철 다른 나무들보다 넓은 초록빛 잎이 무성할 때는 몰랐는데, 겨울이 되어 발가벗고 서니 나무의 상태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참 안쓰러운 상황이다.

나무들은 햇빛이 많은 곳으로 향한다. 위로 크려면 수많은 가지를 떨구어야 한다. 물관을 막으면 그 가지는 말라서 떨어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이 만들어진다. 주어진 환경에서 햇빛을 최대한 잘 받도록 옆으로 커져야 할지, 위로 커져야 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또 전체적인 균형이 맞아야 한다. 바람과 중력을 견디다가 힘에 부치면 쓰러지거나 큰 가지가 부러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나무도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힘을 쏟으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오동나무는 균형이 전혀 맞지 않는다. 가지가 한쪽으로만 나 있다. 더욱이 굵은 가지에 잔가지를 빗자루처럼 내고 있었고, 심지어 나무의 아래 둥치에서도, 줄기의 중간에서도 작은 줄기들이 쑥쑥 나와 있다. 분명 나무는 삶에 대해 엄청나게 당황한 모습이다. 사실 나무는 지금 아주 많이 아프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항상 나무에 끌리는 것은 아빠가 정해주신 것임을.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나무들이 울창한 그곳이었고, 아빠는 내게 나무라는 이름을 주셨다. 모든 나무는 척박한 땅이든, 비탈진 곳이든 씨앗이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곳에서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간다. 작은 벌레부터 노루나 고라니 같은 사냥꾼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자리 잡고 서 있는 터가 와르르 무너지는 일도 생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운명과 시련도 많지만, 매 순간 삶을 향한 의지를 햇빛을 향해 펼치고 꿋꿋이 살아간다.

살아계셨다면 벌써 칠순이 넘으셨지만, 내게는 항상 마흔 살의 모습인 아빠, 난 이제 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어린나무였던 나도 허둥지둥했었는데, 점차 가지들을 가다듬고 비바람에도 단련되어 이제는 제법 균형 잡힌 나무가 되었다. 내 나무가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뜻이 내게는 그 어떤 뜻보다 엄청난 선물인 듯이 느껴진다. 매년 푸른 잎을 내는 나무는 아니지만, 아빠는 항상 내 삶의 기둥으로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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