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배령 길을 걸으며
곰배령 길을 걸으며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04.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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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나도 꽃길을 걸어보자. 누구나 꿈꾸는 꽃길'. 오래전부터 벼르던 인제 점봉산 곰배령 천상의 화원으로 가고 있다. 역시 꽃길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4월초에 예약을 잡으려했다.

그런데 4월말 이제야 곰배령 길을 걸어 볼 수 있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입산허가증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 시간과 인원도 제한하고 있다.

곰배령은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귀둔리 곰배골 마을에서 진동리 설피 밭 마을로 넘어가는 높이 1164m의 고개다. 곰이 배를 하늘로 하고 누워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곰배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곰배령 일대에는 850여 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단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출발지인 점봉산 생태관리 센터 앞에는 보호수인 돌배나무가 있다. 그 둘레가 어마어마하다. 그 몸 둘레가 나무의 나이를 말한다. 돌배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부드러운 흙길의 초입을 지나 거친 돌길을 밟아가는 발걸음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신록이 짙어 지기 전 산의 본 모습을 보면서 올라간다. 파릇한 나무의 새싹과 눈을 두는 곳마다 위대한 생명이 느껴진다. 내가 사는 청주는 이미 봄을 지나 초여름의 문턱을 지키고 있는데 곰배령은 이제 막 봄이 시작되었다. 좁다란 산길에 바람꽃, 엘래지, 양지꽃, 현호색, 족두리 꽃, 처음 보는 나도참제비난은 붓끝으로 잎 한 줄기만 그린 것 같다.

야생화, 자세히 보아야 예쁜 꽃들이 땅에 납작 엎드려 제 일생을 시작하고 있다. 고 작은 꽃들을 보며 올라가는 길은 자루 할 틈도 힘든 것도 잊게 해준다. 한발 한발에 힘이 생긴다.

산을 오르며 진짜 봄을 보는 것 같다. 자연엔 위선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나를 깨우는 봄. 온몸이 새롭게 느껴진다. 웅장하게 뻗은 산줄기 봄볕보다 눈부신 생명신비를 본다.

때론 꽃길 때론 험준한 바위 길로 걸어간다. 가장 험악한 산이 가장 순수함을 품고 있다고 했던가. 야생화가 많은 곰배령을 사람들은 천상의 화원이란다. 내가 갔을 때는 아직 이른 봄이라 “야생화 천국”이라는 말은 크게 실감 나지 않았다.

곰배령을 오르는 내내 발걸음과 함께하는 야생화와 물소리, 새소리가 골 깊은 산에서 위대한 자연의 힘이 느껴진다.

곰배령에서 우리 동네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는 일없이 우리 집 앞을 지나가신다. 힘겹게 살아 오셨음을 짐작 할 수 있는 거친 손으로 우리마당에 피어있는 꽃을 만지며 “아고 예뻐라 예뻐라” 하신다.

어떤 날은 꽃을 오랫동안 지긋이 바라보다가 가시기도 한다. 그 눈빛 손길에 위선도 욕심도 없다. 순수 그 자체다. 연세가 있어 다리도 절룩거리고 농사를 지으시니 입성은 늘 흙이 묻은 일복이다. 할머니는 꽃길로 걸어오지 못하신 것 같다. 할머니는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곰배령의 돌배나무처럼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인다. 돌배나무가 곰배령을 지켜왔듯 할머니도 온몸으로 당신의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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