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 믿는다면
  • 이길주 청주시 흥덕구 행정지원과 주무관
  • 승인 2021.04.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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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길주 청주시 흥덕구 행정지원과 주무관
이길주 청주시 흥덕구 행정지원과 주무관

 

LH 공사 임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활용한 부동산 투기로 전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여파가 중앙부처, 지자체, 정치권으로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중이다. 내부 통제에 실패한 LH 공사를 비롯해 각 지자체, 중앙부처는 이 사태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바로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이다.

이름만 대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도 지금의 가치를 갖기까지는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무한한 노력과 더불어 그러한 신뢰의 시간이 쌓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뢰를 쌓고 유지하는 건 정말 피나는 노력이 들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이라는 걸 우리는 자주 목도해왔다.

대중들의 관심과 찬사를 한 몸에 받던 유명 연예인들이 음주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중들의 신뢰를 잃으면 다시 복귀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소비자들은 가성비만 추구하지 않는다.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측정되지 않는 가치에 투자를 한다. 이른바 `착한 기업'이라고 일컫는 소비자 신뢰를 얻은 기업에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 이는 우리 대한민국만의 트렌드는 아닐 것이다. 전 세계 경영의 화두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가 돼가고 있다.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 구조 개선으로 불리는 ESG 경영의 핵심 가치는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기업 철학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이다.

어느 국가나 사회이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신뢰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의 깊이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10억 원의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1억 원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억만금을 줘도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우리 청주시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수도권으로만 몰리고 있는 우수 인재와 자본을 유치해 미래 먹거리도 창출해야 하고, 점점 심화돼 가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주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는 다양한 갈등 사례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일들을 해야 하는데, 만약 시민들이 청주시가 하는 거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2조 원 예산으로 2000억 원어치의 일 밖에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자산은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한다. 특히나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은 경제적 투자와 인위적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 구성원 모두의 진심 어린 노력이 장시간 이뤄져야 비로소 축적될 수 있고, 이런 노력을 물거품 내지 않기 위해 내부 통제 시스템도 완벽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어제 일찍 퇴근하고 집에 간다 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몇 번 반복됐더니 이제 아들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 가족 간에도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어버렸기에 다시 회복하기 위해 몇 배가 될지 모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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