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
폐업
  • 김정옥 수필가
  • 승인 2021.04.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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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약국이 어둡다. 건물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으면 사람의 부재를 의미한다. 나아가서 영업장에 여러 날 불이 꺼져 있다면 낌새가 심상치 않은 것이리라.

며칠 후 그곳 출입문에 종이 한 장이 떡 하니 붙어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감사의 인사를 여러 겹 포장한 폐업 안내장이었다. 그동안 가족처럼 대해준 손님에게 고마웠다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한다.

폐업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약국 건물 위층에 있던 내과가 3개월 전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처방전을 받아 가까운 약국으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더는 운영에 무리가 있을 터였다. 말끔한 인상에 친절하고 상세하게 복용법에 관해 설명해 주던 청년 약사가 눈에 밟힌다.

마스크 대란 때 밀려드는 손님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 그의 어머니가 옆에서 도와주던 모습도 선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주변 상가가 문 닫는 일을 흔히 본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한 이래로 그 증세가 더욱더 심하다. 한의원, 김밥가게, 옷가게, 한우 식당, 카페 등 문 닫는 업종도 가지가지다. `임대 문의'라고 커다랗게 방을 내건 걸 볼 때마다 내 책임이라도 되는 양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문을 닫는다는 일은 경제적 손실과 실패의 허탈함에 천 길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심정이리라.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단호하게 문을 닫는 것도 전략이다. 큰사위가 태권도장을 운영하다가 폐업한 적이 있다. 간판을 `서광'이라고 하더니 서광만 비치다가 스러진 걸까.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암담함에 한동안 속을 끓여 나도 같이 힘들었다.

폐업은 새로운 출발선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내린 결정이다. 큰사위도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태권도장을 잘 운영하고 있다. 일단 서광은 비쳤으니 그 빛이 멀리 뻗어 승승장구하기를 바랄 뿐이다.

문우가 개업한다고 기별이 왔다. 상호가 `맘에 쏙 드는 수선실'이다. 맡긴 사람의 맘에 쏙 들게 고쳐 줄 모양이다. 이웃에게 수선하는 법을 전수하며 삶을 단단히 꿰매는 기술도 나누려나 보다. 새롭게 열은 그녀의 가게에 일감이 몰려 행복한 미소가 바늘땀마다 촘촘히 박혔으면 좋겠다.

개업과 폐업은 영업 개시고 종료이며 부푼 기대이고 절망이다. 어느 점포는 잘 되고 어느 가게는 망한다.

어떤 사람은 아프고 또 다른 사람은 낫기도 하고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어느 집은 재앙이 들고 누구네는 영화가 오고 그러는 사이에도 꽃은 피었다가 스러진다. `흥망성쇠 부귀빈천이 물레바퀴 돌 듯' 우주 만물이 변화무쌍하다.

삶의 개업과 폐업은 하늘에 달렸지 싶다. 그런데 종종 스스로 폐업하는 사람을 본다. 살아가는 게 버겁다고 혹은 사람들의 눈총과 뭇매가 두려워 지레 포기를 한다. 인생살이 너울에 맞서기도 하고 잔물결에 몸을 내맡기기도 하며 삶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달도 차면 이울듯 나도 따라 변하며 내 본업에 충실하리라.

본업에 성실하던 그 젊은 약사가 오래 힘들지 않고 좋은 자리에서 새롭게 출발하길 바란다. `늘 편한 약국' 간판처럼 마음도 몸도 늘 편했으면 좋겠다.

불시에 쳐들어 와서 아무 데나 터를 잡고 고래 심줄같이 끈질기게 불법 영업을 하는 코로나19는 언제 폐업을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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