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1.04.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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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물리적으로는 같은 시간의 분량이더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전혀 같지 않을 때가 많다. 겨울 석 달은 지독히도 가지 않더니, 춘삼월 석 달은 금세 지나가고 만다. 그만큼 봄을 기다렸고, 또한 봄을 보내지 않으려는 욕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봄이 떠나는 풍광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김만중(金萬重)은 봄이 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 안타까운 마음도 듬뿍 들어 있다.


봄날은 간다(春盡)

南溪春水已平堤(남계춘수이평제) 남쪽 개울 봄물은 이미 둑에 닿아 있고
煙草茫茫路欲迷(연초망망로욕미) 안개 덮인 풀 아득히 펼쳐져 길은 거의 잃을 듯하네
山鳥一聲山日暮(산조일성산일모) 산새 한번 우니 해는 저물고
亂紅飛度小橋西(난홍비도소교서) 흩날리는 붉은 꽃잎은 서쪽 작은 다리 넘어서 날아가네

 

시인이 사는 곳에는 마침 남쪽으로 시내가 흐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그 시내 둑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그만큼 산에서 물이 많이 내려왔다는 얘기인데, 이는 봄이 거의 다 끝나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봄이 끝나가는 조짐은 또 있었다. 이미 우거진 풀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데, 이에 안개가 엉기어 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여름이다. 산새가 한 번 울었는데 하루해가 저문 것은 시간이 빨리 지나감을 말한 것인데, 이처럼 봄은 여름으로 치닫고 있었다. 떨어진 꽃잎들조차도 서쪽 다리를 지나 떠나가는 모습은 봄의 퇴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오는 것은 잘 알아도, 봄이 가는 것은 잘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꽃이 지고 짙은 녹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봄이 간 것이리라. 그러나 봄에 예민한 사람들은 봄의 퇴장 시그널을 다 알아챈다.

냇물이 불어난 것도, 긴 풀에 안개가 엉기어 길이 파묻힌 것도, 산새 울음 한 번에 하루가 저무는 것도, 떨어진 꽃잎이 서쪽 다리를 지나 사라지는 것도 다 봄이 퇴장한다는 시그널이리라.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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