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 장군의 칼 `용천검'의 부활
임경업 장군의 칼 `용천검'의 부활
  • 이기영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장
  • 승인 2021.04.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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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기영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장
이기영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장

 

“한산섬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할 적에…”로 시작하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시조의 내용처럼 `무장(武將)'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속에는 늘 도검이 함께 한다. 도검은 무장의 생명을 지키고 적을 무찌르는 무기인 동시에 무장의 충정과 결의, 용맹과 고뇌까지 모두 담고 있는 상징과 같은 존재이다. 그 덕에 늘 이름난 무인의 곁에는 이름난 명검 혹은 명도가 있었다. 현재는 호국, 통일, 번영에 기여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해·공군의 장성에게 수여하는 삼정검이 있다.

충북도에도 역사 속 명장의 곁을 지켰던 명검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훗날 충민공으로 추증된 임경업 장군의 칼, 추련도(秋蓮刀)이다. 현재 임충민공 충렬사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추련도는 임경엄 장군이 생전에 사용하였던 칼로 2009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300호로 지정되었다. `가을 연꽃'이란 아름다운 이름이 붙어서일까? 추련도의 칼날은 그다지 매섭게 날카롭지 않다. 이는 본래 이 검이 전투용이 아니라 지휘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에 담긴 임경업 장군의 마음은 칼날을 만든 쇠보다 무겁고 단단하다. 그 마음은 칼날에 적힌 칠언절구의 명문으로 알 수 있는데, 평생 조국을 위하는 마음을 이 추련도에 담았다는 내용이 지금도 칼날 위에 생생히 남아있다. 시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절이여, 때는 또다시 오지 않나니(時乎時來不再來, 시호시래불재래)

한번 나고 죽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도다.(一生一死都在筵, 일생일사도재연)

평생 동안 대장부 조국을 위하는 마음(平生丈夫報國心, 평생장부보국심)

석자 추련도를 십년 동안 갈았도다.(三尺秋蓮磨十年, 삼척추련마십연)

전투용으로 임경업 장군이 사용하였던 검은 추련도와 함께 전해졌다던 용천검(龍泉劍)이지만,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사라져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임경업 장군이 큰 못 가를 거닐다 한 마리 용이 입에 물고 나온 단검을 얻게 되었는데, 이를 기억하고자 즉석에서 `용천검(龍泉劍)'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용천에서 생산된 최고의 명검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칼이라는 설도 있다.

용천검이 사라진 지금, 검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추련도에 담았던 장군의 충의와 결의, 그리고 압록강에서 청나라 기병 300기를 단숨에 격퇴하였던 장군의 용맹함이 서려 있을 명검의 모습을 그려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 속에서나 꿈꾸던 용천검이 2020년 무예소설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소설 `용천검명(龍泉劍銘)'으로 부활하였다. 소설의 저자인 이호철 작가는 섬세한 필치로 임경업 장군의 살신성인, 전통무예인 수박희, 의형 황일호와 정인 매환의 모습을 통하여 시대의 아픔을 그려냈으며, 기존의 장군으로의 임경업에서 벗어나 애민정신을 갖고 불의에 맞서고 신의를 지키는 인간다움까지 담아 내었다.

코로나19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에 많아진 요즈음, 한 시대를 풍미한 무인,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었던 신하, 하지만 결국 안타까운 누명으로 옥중에서 목숨을 버려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을 따라 소설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언젠가 책을 넘어 무예액션영화제 스크린 속 임경업 장군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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